‘비서 수첩’ 판도라 상자 열리나

  • 입력 2008년 12월 8일 03시 03분


■ 검찰, 국세청 작성 ‘박연차 리스트’ 분석

朴회장이 만난 인사명단-골프비용-술값 등 자료 확보

비서 수첩엔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까지 상세하게 기록

차명계좌서 수천만원씩 인출된 돈과 연관성 파악 나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였던 박연차(사진) 태광실업 회장을 이번 주 후반쯤 소환 조사할 예정인 가운데 박 회장에 대한 의혹 자체보다는 그와 친분이 있는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이 누구였는지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약 박 회장이 검찰 조사 때 금품을 건넨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등을 거명한다면 ‘친노게이트’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는=올 7월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세무조사 당시 국세청은 태광실업의 법인카드 사용 명세 및 박 회장이 접촉한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등이 적힌 메모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노무현 정부 임기인 2003∼2007년 태광실업 측 법인카드의 구체적인 사용 명세와 박 회장 비서의 개인 수첩에 적힌 박 회장의 일정 등을 대조한 자료를 만들어 검찰에 넘겼다고 한다.

이 자료에는 박 회장이 만난 정치권 인사와 부산경남 지역 인사, 기업인 등의 명단은 물론 이들과 만나 식사비나 골프 비용, 술값으로 얼마를 사용했는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 비서의 수첩에는 외부에서 언제 누가 전화를 걸어왔는지도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이 확보한 ‘박연차 리스트’는 박 회장의 정관계 인사와의 접촉 반경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 나도는 ‘설(說)’ 수준의 리스트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결국은 박 회장의 입이 관건”=수사팀은 이 리스트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박 회장 사건은 본질상 국세청의 탈세 혐의 고발에 대한 수사이지 정관계 로비 수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큰 사건 수사 때 리스트가 나오면 수사가 실패한다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회장과 친분이 있다거나 만났다는 것 자체가 범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리스트는 대형 사건 수사 때마다 종종 수사의 기폭제가 됐던 ‘비자금 장부’와도 성격이 다르다.

대검 중수부는 올 8월 공기업 비리 수사 당시 열병합발전설비공사 업체인 ㈜케너텍 재무담당자의 비자금 장부를 확보했는데 그 장부에는 68억 원 상당의 비자금 사용 날짜와 금품 수수자 명단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국세청으로부터 넘겨받은 이 리스트가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수사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박 회장이 특정 시기를 전후해 차명 계좌에서 매일 수천만 원의 현금을 집중적으로 인출한 사실이 파악돼 있어 리스트를 토대로 해 이 시기에 박 회장이 만난 인사들이 누구인지를 정밀하게 비교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명계좌에서 인출된 돈이 현금으로 건네졌거나 여러 차례의 돈세탁 과정을 거쳐 건네졌다면 혐의 입증은 쉽지 않다. 따라서 검찰 안팎에서는 결국 정관계 로비 수사의 관건은 박 회장의 입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최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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