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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2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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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지나는 영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Hello, I'm Jina. I like apples”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지나의 부모님은 “영어를 10년 넘게 배운 우리보다 지나가 발음이 훨씬 좋고 영어로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며 뿌듯해했다. 네 살배기 현수는 유치원에서 석 달이 넘도록 영어를 배웠지만 한 번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쉬는 시간,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으로 플래시 카드를 줄줄 읽어내서 영어 교사를 놀라게 했다. 현수는 그 뒤부터 곧잘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섯 살 수연이는 유치원 교사가 여름철 동물들의 물놀이에 대한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는 내용을 듣고 나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할 때 자기도 모르게 “Splash!”라고 외치며 텀벙거리는 흉내를 냈다. 그림책에 나온 표현을 곧바로 인용한 것이었다.》
○ 유아는 모국어처럼 영어를 흡수한다
유아 영어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유아들이 거부감 없이 영어를 자연스레 흡수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유아가 영어를 더 쉽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얼까?
첫째, 어린 시절에 영어를 접할수록 영어발음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강구조는 나이가 들수록 자국의 언어를 발음하기에 알맞게 조금씩 굳어간다. 그러나 유아는 아직 구강구조가 굳어지기 전이라 한국말에 없는 발음도 어려움 없이 익힐 수 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구강구조가 많이 굳어져서 한국말에 없는 발음을 소리 내어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 영어를 배우면 문법적으로 정확한 영어, 고급스러운 영어는 구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다. 구강구조가 이미 한국말에 알맞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유아는 모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유아는 스스로 판단하거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의식이 생겨나기 전이기에 뭐든지 스펀지처럼 그대로 빨아들인다. 의식적으로 영어를 배운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습득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는 데 훨씬 유리하다.
○ 유아의 눈높이에 맞는 영어교육을 하자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유아 영어교육에 찬성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유아 영어교육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뚜렷하게 갈린다. 아직 한국말도 익숙하지 않은 유아에게 영어를 가르치면 혼란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많다. 과연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유아에게 가장 긍정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일까?
1. 유아의 발달단계를 이해하자
유아 영어교육에서는 유아의 신체적, 인지적 발달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취학 전 아이는 듣고, 보고, 만지고, 몸을 움직이는 등 오감 활동으로 많은 경험을 하고 배운다. 아직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구체적인 소재와 활동이 있어야 한다. 스티커를 붙이고, 줄을 긋고, 색칠을 하고, 노래 부르고, 율동을 하고, 게임을 하는 등 오감을 자극하는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영어를 즐겁게 배우면 교육효과도 높다.
요즘 일부 유치원에서 하는 ‘멀티수업’도 효과적이다. 직접 화면을 터치하면서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쌍방향 시스템은 유아가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2. 유아의 눈높이에 맞는 소재와 방식을 찾자
유아들은 자신과 관련된 대상에만 관심과 흥미를 갖는다. 아무리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소재라도 유아가 생각하고 느끼는 영역 밖의 것이라면 흥미를 끌 수 없다. 따라서 유아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소재를 가지고 영어를 공부시켜야 한다.
유아의 흥미와 관심에 맞춘 활동도 도움이 된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유아라면 물고기에 대한 영어책을 먼저 보여주고 단어공부를 할 때 낚시게임을 활용할 수 있다. 글자나 그림 단어를 코팅해서 클립을 끼우고 자석을 붙인 간이 낚싯대를 만든 뒤 “Let's fish for F!” 하면서 ‘F’로 시작되는 단어를 낚게 한다면 흥미롭게 파닉스 학습을 할 수 있다.
공룡을 좋아하는 유아라면 다른 단어는 몰라도 어렵고 긴 공룡 이름은 줄줄 외운다. 게임을 좋아하는 유아, 스토리 북을 좋아하는 유아, 노래와 율동을 좋아하는 유아 등 특성에 따라 영어를 처음 접하는 방식을 달리하면 좋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소재와 방식으로 영어를 접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하다가 차츰 소재와 방식을 다양화하고 확장시켜 나가도 좋다.
유아들은 반복을 좋아한다. 읽은 책을 읽고 또 읽고,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기를 원하는 성향이 있다. 지겹지도 않을까 싶지만 사실 유아는 이야기를 반복해 들으면서 자신의 경험을 기존에 알던 지식과 새롭게 결합시킨다. 기존의 지식구조를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3. 영어로 전 영역을 공부하자
유아 영어교육을 할 때 영어라는 언어만 독립시켜서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취학 전 아이의 인지발달은 골고루 이뤄져야 한다. 특히 유아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서 다양한 영역별 활동이 더더욱 필요하다.
예를 들면, 영어를 통해서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사회영역을 공부함으로써 전체적인 인지발달을 꾀할 수 있다. 동물에 대해 배울 때도 동물의 수를 세는 수학 활동을 하거나, 야행성 동물을 가려내고 육식·초식 동물을 구분하는 과학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다. 동물과 관련된 노래나 챈트(율동과 함께 부르는 영어노래)를 하는 음악 활동, 동물 모양의 가면을 만드는 미술 활동, 동물의 서식지를 알아보는 지리 활동 등을 병행할 수도 있다.
4.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기초를 골고루 다져놓자
영어를 듣기와 말하기로만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 그러나 듣기, 말하기 못지않게 읽기, 쓰기도 중요하다.
알파벳을 겨우 쓰는 정도라고 해도, 혹은 그보다 낮은 수준이라 해도 문제없다. 그림이 글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된 글을 읽고,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그림으로 대신 표현할 수 있다. 그림을 보고 순서에 맞춰 배열하는 것도 글쓰기의 기본 훈련이 될 수 있다. 이 모두가 장차 초등학교 입학 후에 적극적으로 개발하게 될 문해(文解) 능력의 기초를 쌓는 활동이다.
글자를 쓰기 전 다양한 선긋기 놀이를 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하면 글자 위에 따라 그리거나(tracing) 알파벳 첫 자만 쓰는 것도 가능해진다.
첫 단계에서는 듣기와 말하기가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등 언어의 모든 영역을 골고루 다뤄야 장차 균형 잡힌 언어학습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내용은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차근차근 놀이처럼 해나가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가 ‘apple’이나 ‘lion’ 같은 영어단어 하나만 외쳐도 기뻐한다. 의미 있는 첫걸음이긴 하겠지만, 단어 하나를 말하고 못하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 유아라고 해서 ‘사과는 apple’, ‘사자는 lion’처럼 단어만 가르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유아들은 플래시 카드와 실물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고, 게임을 하면서 ‘사과는 apple’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apple’을 힘들게 배우느니 차라리 나이가 들어서 단어 여러 개를 한꺼번에 쉽게 익히는 것이 경제적”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apple’이라는 단어 하나를 배우기 위해 플래시 카드와 실물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고, 게임을 하는 것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너무 힘들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아 영어교육은 시간 낭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코 돌아가는 길이 아니다. ‘apple’을 배우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언어입력(input)’을 받고 풍성한 경험 속에서 풍부한 언어를 익히는 것이 유아에게 적합한 교육 방식이다.
5. 스토리 북을 적극 활용하자
구성이 탄탄하고 흥미로운 스토리 북은 유아 영어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 스토리 북을 활용하면 이야기의 전체구조 안에서 다양한 언어입력 효과를 낼 수 있다.
유아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스펀지 같은 존재라고 언급한 바 있다. 어른의 기준으로 언어의 조각을 하나씩 알려 주고 그것을 말하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언어를 통째로 선물처럼 던져 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탐구해 나가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앞으로 긴 세월 동안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유아에게는 영어를 놀이처럼 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아 안에는 언어를 배우는 놀라운 장치가 들어 있다. 하지만 유아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를 잘 활용할 수 없다.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긍정적인 정서환경과 유아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로운 소재 및 놀이, 연관성 있는 다양한 언어 입력, 기다려 주는 자세 등이 모두 필요하다.
유아 영어교육의 목표는 자녀가 영어분야에서 남보다 한발 앞서가는 것만이 아니다. 영어를 통해 인지발달과 정서발달에 도움을 받고, 다른 언어로 세계를 탐구하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유아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언어에 노출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유아에게 심겨진 영어라는 마법의 콩은 ‘잭의 콩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나게 될 것이다.
노진희 엘림에듀 영어사업본부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