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클로버필드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저 멀리서 뭔가 육중한 덩어리 하나가 날아와 눈앞에 ‘쿵’ 하고 떨어집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이럴 수가! 자유의 여신상 머리통이 아니겠어요? 미국 뉴욕의 심장부 맨해튼에 출몰한 정체불명 괴수가 자유의 여신상을 유린해버린 거죠. 영화 ‘클로버필드(Cloverfield)’는 이런 쇼킹한 장면으로 출발해요. 이 영화, 괴수 영화치고는 해괴망측해요. (일부러) 조악하게 찍은 화면은 90분 상영시간 내내 미친 듯이 요동치면서 보는 이의 구토가 쏠릴 지경이죠. 게다가 괴수는 끝끝내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아 감질나게 만들어요.》

아무도 ‘왜’를 모르는…대재앙의 한가운데 내가 서 있다면?

더 황당한 얘기를 들려드릴까요? 영화 제목인 ‘클로버필드’는 대관절 무슨 뜻일까요? 정답은 ‘아무 뜻도 없다’예요. 클로버필드는 이 영화를 연출한 J J 에이브람스 감독이 소유한 영화사가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거리 이름에 불과하니까요.

[1] 스토리라인

외국으로 직장을 옮기는 ‘롭’을 위해 뉴욕 맨해튼에서 송별 파티가 열립니다. 롭의 친구인 ‘허드’는 캠코더를 들고 파티 현장을 찍느라 분주하지요. 이 때 갑자기 괴성이 들리면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흔들립니다.

파티장을 나온 롭 일행은 깜짝 놀랍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괴물이 맨해튼에 출몰해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던 거죠. 롭은 맨해튼 반대편에 사는 여자친구 ‘베스’가 걱정됐어요. 베스를 구하려고 그녀의 집으로 달려가는 롭. 뒤따르던 허드는 눈앞에 펼쳐지는 아수라장을 고스란히 캠코더에 담으면서 롭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기록해요.

[2] 핵심 콕콕 찌르기

참 이상하죠? ‘클로버필드’는 괴수의 습격이라는 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왠지 모를 생경함으로 가득하니까요.

그 이유는 간단해요. 이 영화는 시각(view point)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클로버필드’는 ‘허드가 캠코더에 담은 영상’을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전제로 출발해요. 상영시간 내내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허드가 1인칭 시각에서 자신의 캠코더에 거칠게 담은 영상뿐이죠. 그러니 화면이 상하좌우로 마구 흔들리는 건 기본이고 툭툭 끊기기까지 하죠.

대부분의 괴수영화는 3인칭 시점에서 전개되죠? 관객에겐 괴수의 탄생 배경(예를 들어 인간의 무분별한 핵실험에 따른 유전자 변이)이나 정체에 관한 정보가 친절하게 주어진단 얘기죠. 게다가 괴물은 클라이맥스 지점에서 십중팔구 자신의 전신을 스크린에 드러내요.

그런데 ‘클로버필드’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괴수가 어떻게 생겨난 건지, 어디로부터 온 건지 도무지 관객에게 알려주질 않아요. 관객은 괴수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조차 없어요. 화면 안에 나타났다가 금방 또 사라져버리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허드의 캠코더에 담긴 영상 정보가 영화의 전부잖아요? 허드의 1인칭 시점 속으로 들어간 관객은 괴수에 관한 제한된 정보만으로 진실의 퍼즐조각을 맞춰가야만 하죠.

궁금해요. 왜 ‘클로버필드’는 이런 희한한 시점을 선택한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클로버필드’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란 사실! 이 영화는 관객이 재앙을 ‘구경하기(seeing)’를 원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기(experience)’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재앙을 겪는 피해자의 시점이 되어 재앙 현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끔찍한 공포를 체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죠.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만약 나 자신이 2001년 9월 11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무역센터빌딩(일명 쌍둥이빌딩)에 있었다고 가정해 볼까요? 갑자기 뭔가가 빌딩에 부닥친 뒤 건물은 흔들렸고, 빌딩은 붕괴되기 시작해요. 전기가 끊겨 건물 안는 암흑이고, 외부와는 통신 두절 상태죠. 무엇 때문에 건물이 파괴됐는지, 건물의 피해 상황은 어느 정도인지, 건물을 빠져나갈 방법은 어떤 게 있는지…, 건물 안에 갇힌 나는 전혀 알지 못해 두려움에 떨 거예요.

물론 TV 긴급뉴스를 통해 이 사건을 멀찍이서 지켜본 다른 많은 사람은 금세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게 될 거예요. 여객기가 쌍둥이빌딩을 들이받아 일어난 사고이며 이슬람 과격단체가 벌인 테러로 추정된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테니까요. 하지만 정작 이 끔찍한 사고의 한복판에 있던 희생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겠죠.

빙고! 바로 이거예요. 이 영화가 주인공 일행의 1인칭 시각(캠코더)에서 포착된 영상만을 보여주는 진짜 까닭이. 괴수의 탄생 배경도, 구체적인 형상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관객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재앙(천재지변이나 대형사고나 테러 같은)을 피부로 느끼도록 유도한 것이죠.

여기서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말씀드릴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클로버필드’는 거대 괴수를 스크린에 재현하는 데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컴퓨터그래픽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답니다. 이런 걸 일컬어 ‘임도 보고 뽕도 땄다’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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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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