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월드 대신 한국에 올 돈 모았죠”

  • 입력 2008년 5월 4일 19시 58분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포츠머스 시 애비스쿨의 인문학 교사인 블레이크 빌링즈(49) 씨와 심리상담사인 부인 질리안 팬턴(44) 씨는 1997년부터 팬턴(한국명 한성민·11) 군 등 한국인 4명을 차례로 입 양했다. 왼쪽부터 빌링즈 씨, 루시아(김은희·8) 양, 팬턴 군, 트리사(안희진·6) 양, 존(모형식·10) 군, 질리안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포츠머스 시 애비스쿨의 인문학 교사인 블레이크 빌링즈(49) 씨와 심리상담사인 부인 질리안 팬턴(44) 씨는 1997년부터 팬턴(한국명 한성민·11) 군 등 한국인 4명을 차례로 입 양했다. 왼쪽부터 빌링즈 씨, 루시아(김은희·8) 양, 팬턴 군, 트리사(안희진·6) 양, 존(모형식·10) 군, 질리안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아빠 여기는 어디에요?"(팬턴 빌링즈·11)

"이곳은 여의도라고 하는 지역이란다. 큰 공원이 있고 미국 대도시의 다운타운들처럼 한국의 큰 회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야."(블레이크 빌링즈·49)

3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 호기심 가득한 한국인 아들과 자상한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질문과 대답이 한동안 이어졌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포츠머스시의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 애비스쿨의 인문학 교사인 빌링즈 씨와 심리상담사인 부인 질리안 팬턴(44·여) 씨는 1997년 팬턴(한국명 한성민) 군을 입양했다. 이후 1999년 존(10·모형식), 2000년 루시아(8·여·김은희), 2003년 트리사(6·여·안희진) 양 등 한국 아이들을 차례로 입양했다.

결혼할 때부터 외국 아이를 입양할 마음이었던 빌링즈 씨 부부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 배경과 취지에 좋은 인상을 받아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3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가족여행을 온 빌링즈 씨 가족은 스스로를 '한국계 미국인 가정(Korean American Family)'이라고 부를 만큼 한국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 팬턴 씨는 "우리 집은 디즈니월드 갈 돈 대신 한국에 올 돈을 모은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교육을 시키는 데 적극적이다. 미국에서도 추석과 설날 등의 한국 명절을 지내는 것은 물론 떡볶이와 잡채 같은 한국음식까지 직접 요리해 아이들에게 준다.

아이들의 한국 이름도 지우지 않았다. 학교 출석부 등에 적히는 팬턴 군의 공식 이름은 '팬턴 한성민 빌링즈'다.

빌링즈 씨는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름이 가장 긴 아이들"이라며 "집에서도 아이들을 부를 때 미국 이름과 한국 이름 두 개를 모두 쓴다"고 웃었다.

인문학 교사인 아버지를 둔 가족답게 빌링즈 씨 가족은 이번 여행을 통해 다양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서울의 고궁, 남산타워, 여의도공원, 헤이리 마을, 범어사 등을 둘러봤고 지하철도 자주 이용했다. '부처님 오신날' 기념 제등행렬도 지켜봤다.

빌링즈 씨는 "아이들에게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경험을 주고 싶다"며 "특히 지하철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접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빌링즈 씨 부부의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아이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팬턴 군과 루시아 양은 한국의 지하철과 음식에 관심이 많아 학교에서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발표를 할 때도 한국의 지하철과 음식을 주제로 삼았다.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교육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빌링즈 씨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빌링즈 씨 부부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글로벌화 될 때 한국인이며 동시에 미국인인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질 것"이라며 "부모로서 아이들이 두 개의 정체성을 조화시키고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며 5일이 '어린이 날'인 것도 아는 팬턴 씨는 "한국의 출산률은 낮아지고 입양율은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둘 모두 많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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