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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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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이: 만약 한겨울에도 꽃이 핀다면, 설악의 경관이 더욱 수려해질 텐데….
적성이: 한겨울엔 꽃이 못 펴.
법학이: 내 말은, 만약 겨울에도 꽃이 핀다면….
적성이: 아 글쎄, 겨울에는 꽃이 못 핀다니까!
적성이는 이 대화에서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건 부정의 오류’이다.
전건 부정의 오류란 두 문장으로 결합된 조건 명제(Conditional Statements)에서 조건에 해당하는 문장인 전건(여기에서는 ‘한겨울에 꽃이 핀다’)을 부정함으로써 문장 간의 유의미한 관계마저 부정해버리는 오류를 말한다. 조건 명제란 전건이 참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건이 참(혹은 거짓)이라면 후건(後件·consequent) 역시 참(혹은 거짓)이라는 것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조건 명제의 후건을 부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조건 명제가 갖는 관계적 의미를 인정하되,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명제의 의미에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내가 새라면, 날아갈 텐데’라는 조건 명제의 경우 전건을 부정하여 후건을 부정하면 오류이지만, 후건을 부정하여 전건을 부정할 수는 있다. 즉, ‘네가 어떻게 새야? 너는 날지 못해!’가 아닌 ‘너는 날지 못했어. 그렇다면 너는 새가 아니야’라는 논의는 타당하다.
우리 주변엔 타당한 논증 형식과 외관상 유사하여 현혹당하기 쉬운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쳤다고 가정해보자.
‘지역 주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지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 논증은 ① ‘어떤 사람은 지역 주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없다’는 전건과 ‘그 사람은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후건을 가진 조건 명제를 첫째 전제로, ② ‘나는 지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전건 부정문을 다른 하나의 전제로 하여, ③ ‘나는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있다’는 암묵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일지라도 이는 명백한 오류 논증인 것이다. 만약 적성이가 ‘한겨울의 꽃은 순백의 장관을 오히려 퇴색시킬 거야’라고 말했다면 최소한 전건 부정의 오류는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임상욱 엘림에듀 CTI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