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경제]‘보상’은 게으른 베짱이도 일하게 한답니다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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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정환(22)은 한없이 올라만 가는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나섰다. 부모님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시지만 넉넉지 않은 살림에 부모님에게 의지하고만 싶지는 않았다.

부지런히 발품을 판 덕분에 드디어 원하던 자리를 구했다. 어느 공장에서 한 달 정도 창고 정리하는 것을 돕는 일이었다. 기간도 마음에 들었고 보수도 괜찮은 편이었다.

창고 정리는 다른 두 학생과 함께하게 됐다.

아르바이트 첫날, 팀장은 학생들이 할 일을 설명했다.

“우리 공장은 생산 공정을 새롭게 조정하려고 합니다. 이에 맞춰 창고도 대대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어 여러분의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오늘 할 일은….”

정환은 열심히 일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구하기 어려운 자리를 얻게 된 데 감사했다.

며칠이 지나자 정환은 다른 두 학생이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은 열심히 일하는데 그들은 대충 시간을 보내다 팀장이 올 때만 열심히 일하는 척했다.

“기왕 함께 일하게 됐으니 부지런히 일하고 얼른 끝내지요.”

학생들은 오히려 정환을 나무랐다.

“열심히 일한다고 누가 알아줍니까. 이 공장에서 평생 일할 것도 아닌데, 혼자만 순진한 척하지 말아요.”

정환은 자신만 열심히 하는 것에 은근히 화가 났다. 정환 역시 대충 일하다가 팀장이 올 때만 부지런히 일하는 척하게 됐다.

퇴근 무렵 팀장이 작업량을 확인하러 올 때마다 그날 일을 끝내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일이 좀 힘들지요?”라며 웃으며 눈감아 주던 팀장도 계속해서 그날 작업을 마치지 못하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제안을 했다.

“오늘부터는 세 사람에게 각각 할 일을 정해 주겠어요. 일을 마친 사람은 나에게 보고하세요. 제가 검사해 보고 이상이 없으면 바로 퇴근해도 좋습니다. 먼저 정환 씨는….”

팀장의 아이디어가 바로 빛을 발휘했다. 정환은 물론 다른 두 학생도 모두 최선을 다해 일하게 됐다. 하루 작업량을 모두 마칠 수 있을 뿐 아니라 평소보다 퇴근 시간도 빨라졌다.

아르바이트를 마치는 날 정환은 팀장의 지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 이해

어떤 일을 자신이 직접 하기보다는 대리인을 고용해 일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일을 맡기는 사람을 주인(principal), 일을 부탁받은 사람을 대리인(agent)이라고 부르는데 주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해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을 좇을 때 생기는 문제를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고 한다.

앞의 사례에서는 창고 정리를 맡긴 팀장(또는 회사)이 주인이고, 그 일을 맡은 정환과 다른 두 학생이 대리인인 셈이다. 학생들은 팀장이 곁에서 자신의 행동을 감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며 대충대충 일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주인-대리인 문제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회사의 경영을 부탁받은 경영자(대리인)가 회사 주주(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주인)의 감시를 일일이 받지 않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보험 시장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보험회사(주인)가 보험 가입자(대리인)의 행동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보험 가입자들이 의무 이행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화재보험 가입자는 불이 나도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화재 예방을 위해 신경을 덜 쓸 수 있고,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안전 운전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보험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주인-대리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답은 팀장의 지혜에 숨어 있다. 대리인의 행동에 따라 차별화된 보상을 하는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 세 학생은 일을 마치는 순서대로 퇴근할 수 있었다. 작업 실적에 따른 일종의 보상(퇴근 시간)을 받은 셈이다.

보험 시장에서도 차별화된 보상이 적용될 수 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안전 운전 의무를 열심히 이행해 사고를 내지 않은 사람에게 다음 보험료를 할인해 주거나 사고를 낸 사람에게는 할증을 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대리인의 행동에 따른 차별화된 보상이 적용되면 대리인은 주인의 감독이 없더라도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박 형 준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교육 전공

정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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