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안토니오 그람시,‘감옥에서 보낸 편지’

  • 입력 2007년 8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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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사등에 부스스한 머리칼을 지닌 소년이 있었습니다. 1891년 이탈리아의 섬, 샤르데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그람시입니다. 바로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설한 인물이지요.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람시가 감옥에서 지낸 10여 년 동안 그의 두 아들과 어머니,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것입니다. 그는 외롭고 힘든 상황 속에서 수백 통의 편지를 썼는데, 그 중에 수십 통만 여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947년 ‘감옥에서 보낸 편지’가 출간됐을 때 이탈리아 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사적인 편지글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감동적인 시나 소설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사적인 편지글이었지만 편지 한 장, 한 장이 예사롭지 않은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5년, 8년, 또는 10년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비뚤어지는가를 볼 때, 나는 내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소. 틀림없이 그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결코 이러한 체제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거요.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인식조차 하지 못하면서 그들은 갑자기 완전히 변해버린 오늘의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오.”

그는 세상과 단절된 감옥 안에서 자신이 변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서서히 사람을 굴복시키고 변하게 만드는 체제 속에서 스스로 인식조차 못하고 변해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신념이 보이지 않는 힘 혹은 억압 속에서 조금씩 병들어 간다면, 심지어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그람시의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그의 문장은 자신조차 잃어버리기 쉬운 협소한 공간에서도 끊임없이 사유가 솟아났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철학 문학 역사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감옥 내 도서관을 전전하며 학습에 학습을 더했지요. 그 결과, 3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옥중수고’를 남기기에 이릅니다. ‘수고(手稿)’라는 말은 ‘손수 쓴 원고’라는 뜻입니다.

그람시의 주무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의 이탈리아였습니다. 그 시절은 혁명가나 지식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무솔리니(독재 정치로 이탈리아를 이끌어간 파시스트)가 이끄는 파시스트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유로운 생각, 구속 없는 행동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 에서 혁명가나 지식인들의 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람시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무솔리니 정권에 맞섭니다. 이탈리아 공산당을 조직하고 파시즘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에 앞장섰지요. 1926년 8월, 로마에서 체포되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항거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판결문에 따라 징역 20년 4개월 5일형을 선고받습니다.

여러분은 그람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가엾은 곱사등이 혁명가이자 지식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이는 그를 ‘이탈리아의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불편한 몸이지만 그 누구보다 영롱한 영혼을 가지고 이탈리아에 자유를 심어 주었다고 말이지요.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에게 붙은 ‘영웅’이라는 수식어에 비하면 허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억압당한 한 인간의 고뇌와 사상 신념이 녹록치 않게 담겨 있기에 값어치 있는 시대의 유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람시의 옥중편지는 학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여러분에게 색다른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의 편지는 이미 배달되었으니 여러분은 이제 읽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어서 빨리 봉투를 뜯어보세요.

이승은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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