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없어 아픈 설움 겪어본 내가 알지”

  • 입력 2007년 6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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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것보다 어려운 형편에 아픈 게 더 괴롭더라고….”

경남 진해시 이동에서 ‘아귀찜 할매’로 불리는 김공순(64·사진) 할머니는 최근 서울아산병원에 평생 어렵게 모은 전 재산 1억 원을 기부하며 “돈이 없어 몸과 마음이 모두 괴로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5년간 ‘할매 아귀찜’이라는 식당을 운영 중인 할머니는 평생을 혼자 지냈다. 또 어려웠던 가정 형편 때문에 18세 때부터 고향인 진해를 비롯해 부산 하동 등을 떠돌며 식당일 식모일 공장일 행상 등을 해 왔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계속 공부를 해 당시 여성들은 꿈꾸기 힘들었던 경찰관이나 파일럿이 되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은 할머니의 희망을 ‘꿈’에 머물게 했다.

공부를 맘껏 못한 게 한이 됐던 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난한 사람들의 장학금으로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할머니는 20년 전 일하던 우지 가공 공장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척추를 다쳤다.

5년간 입원 치료를 받으며 할머니는 “못 배운 것보다 아픈데도 가난해 병원비 걱정을 해야 하는 게 훨씬 더 괴롭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나 장학재단이 아닌 병원에 재산을 기부해야겠다는 생각도 이때부터 했다.

그 뒤에도 할머니는 교통사고, 뇌출혈, 심근경색 등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 최근에도 할머니는 갑상샘 질환이 생겨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한다.

김 할머니는 “나도 건강이 안 좋기는 하지만 아직 가게가 있고 생활비 정도는 벌 자신이 있다”며 “내가 모은 돈이 좋은 데 사용되는 걸 보고 싶어 기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잘못된 것을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지적하는 성격이라 동네에서 ‘무서운 할매’로도 통하는 김 할머니지만 주위의 칭찬에는 부끄럽다는 표정이다.

할머니는 “그냥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했고, 많은 돈을 기부한 것도 아닌데 주위 사람들이 알은척을 하고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쑥스럽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세웠던 목표를 이룬 김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는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 마음이 설렌다고 말한다.

“알뜰하게 생활하면 돈은 금방 자연스럽게 모이더라고…. 지금 있는 빈 통장이 다시 채워지면 아프리카의 배고픈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어. 그러려면 아귀찜 많이 팔아야지.”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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