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구한 판사의 편지 한통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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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선고한 피고 아들에게 격려의 편지

“편지 덕에 마음잡아 1등 했어요” 답장

“아버지에게 유죄를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좌절하지 말고….”

대전지법 형사2단독 서정(35·사진) 판사가 이달 초 자신이 유죄를 선고한 피고인의 아들 김모(16·고1) 군에게 학업에 전념할 것을 당부하는 편지와 약간의 학비를 보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서 판사는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넘어온 김 군 아버지 사건 서류에 첨부된 한 통의 편지를 보고 김 군을 알게 됐다. 김 군은 이 편지에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겪은 자신과 가족의 고통과 좌절을 소상히 밝히며 선처를 호소했다.

서 판사는 5일 김 군 아버지에게 징역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뒤 김 군에게 편지를 썼다. 유죄 판결이 불가피했지만 아버지는 가장으로 존경할 만한 분인 만큼 용기를 잃지 말고 공부에 열중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또 “참고서 사는 데 써라”라며 20만 원을 동봉했다.

이 사실은 김 군이 12일 대전지법으로 보낸 감사 답장을 직원들이 민원서류로 잘못 알고 개봉해 읽으면서 알려졌다.

김 군은 답장에서 “판사님의 편지가 힘들었던 저를 단단히 잡아 주고 있다”며 “훌륭한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전교 1등을 차지했고 반장으로 뽑힌 사실도 전했다.

서 판사는 “김 군이 검찰에 보낸 편지에서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동분서주해 온 아버지에 대한 처벌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춘기 소년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며 “비뚤어지지 않게 돕고자 한 작은 일이 알려져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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