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 편안하게]<2>“내집 앞엔 안돼” 화장장 갈등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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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우리 동네만은 안 된다고 하니 난감할 따름입니다.”

경기도는 수천억 원의 인센티브를 내걸고 광역화장장 후보지를 찾기 위해 4년째 고심 중이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선 시군과 의회가 동의하면 주민들이 반대하고, 주민들까지 설득하면 인근 마을이나 경계를 접한 다른 지자체가 반발하고 나선다.

시장과 주민 간 충돌까지 벌어지며 5개월째 진통을 겪고 있는 경기 하남시가 대표 사례. 2000억 원에 이르는 지원금이 예상되지만 주민들의 반대는 완강하다. 시는 주민 찬반투표에 부치기로 했지만, 주민들은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추진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최근에는 하남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등 4당 위원장도 시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아직 용지 확정도 안 됐지만 인접한 경기 광주시민들도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는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화장장을 유치할 시군 공모를 했지만 주민반발로 모두 무산됐다. 2차 공모 때는 주민대표기관인 의회 동의까지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경기도는 성남(화장로 15기)과 수원(9기)에 화장장을 갖고 있지만 현재 60%인 화장률이 77%에 이르는 2015년이면 화장로 20기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승형 경기도 장묘문화담당은 “하남시가 안 되면 광역화장장 신설은 더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며 “자체 화장장을 추진 중인 부천과 용인을 지원해 급한 불이라도 꺼야 하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 일방통행이 낳은 주민 반발

화장장 건립을 둘러싼 갈등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이른바 ‘떼법’ 앞에서는 법원 판결도 도움이 못된다.

서울시가 2001년부터 추진해 온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의 경우 주민들이 도시계획시설 결정취소 청구소송을 냈지만 서울시가 1, 2심에서 모두 승소해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대법원에서도 서울시가 이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추모공원 건립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한 장묘시설 관계자는 “시가 승소하더라도 주민들이 반발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서울시도 이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추진되는 화장장은 오염물질 배출이 거의 없는 첨단시설로 꾸며지는 추세다. 여기에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까지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지역주민들에겐 평생직장도 보장된다.

그럼에도 주민반발이 끊이지 않는 주된 이유는 주민동의 없이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화장장 유치를 밀어붙인 데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남시도 지난해 10월 시장이 일방적으로 화장장 유치를 발표했다.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지자체들도 대부분 주민과의 협의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김황식 하남시장은 “시의회에 먼저 보고한 것이 마치 주민들 의사는 무시한 것처럼 비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역이기주의(NIMBY)’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할 말이 많다. 하남 주민들은 “인구 13만 명의 소도시에 대규모 혐오시설이 들어서면 인센티브나 지역개발에 따른 이익에 비해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하락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소규모 화장장을 추진했다면 이처럼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은 “과거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사업추진방식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며 “아직도 주민들을 협상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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