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약자의 협상

  • 입력 2007년 3월 20일 03시 01분


약자의 협상, 담판과 유혹의 카드를 활용하려면

993년, 거란족의 80만 군대가 고려를 침략했다. 대책이 없던 고려 조정(朝廷)은 항복하거나 평양을 떼어 주고 화해하는 길을 모색했다. 이때 서희는 거란 장수 소손녕을 만나 담판을 짓는다. 그는 세 치 혀로 적군을 돌려보냈을 뿐 아니라, 압록강 동쪽의 여섯 주를 얻어내기까지 했다.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6자회담 등 중요한 담판이 이어지는 요즘이다. 이럴수록 서희 같은 인물이 그립다. 훨씬 힘이 센 상대방이 알아서 고개를 숙일 리 없다. 약한 자가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약자에게도 쓸 만한 카드는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라고 손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승리가 당연하다 해도 다툼은 언제나 두렵다. 상대를 누르는 과정에서 자신도 상당한 상처를 입는 까닭이다. 약자는 이 점을 활용해야 한다. 심리학자 로버트 그린은 약할수록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알아서 기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며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 주어라. 달려드는 쥐에게는 고양이도 움찔하기 마련이다.

‘유혹의 기술’도 중요하다. 성급하게 끝장내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강한 상대가 나와 대화하자며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가진 매력을 최대한 살려서 상대를 속 태우게 만들라. “나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갖지 못할 때, 심지어 거절당하기까지 할 때 상대는 더 큰 절실함을 느낀다.” 그린의 귀띔이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은 협상력의 차이는 ‘정보’에 있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꿰뚫어 아는 이는 두려움을 준다. 상대를 철저히 연구하되 내가 지닌 ‘한 방’은 감춰라. 잘 모를수록 상대의 능력은 실제보다 크게 다가온다. 시험 직전이면 늘 퍼지곤 하는 가짜정보들이 얼마나 큰 공포감을 주는지 떠올려 보자.

북한은 이러한 협상의 기법을 잘 써먹는다. 가장 가난한 나라가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쥐락펴락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북한의 담판능력은 북측 주민들을 옥죄는 독재의 힘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식량과 연료를 얻기 위해 내부 단속에 목숨 거는 북측이 과연 ‘성공적인 외교’를 펼친다고 할 수 있을까? FTA 회담장에 나가는 남측은 적어도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는다. 협상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 외교에서 이길수록 더 어려워지는 북한의 문제가 무엇인지 곱씹어 볼 일이다.

홧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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