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석]‘집회 자유’ 앞서 ‘준법 집회’ 믿음 줘야

  • 입력 2006년 12월 1일 03시 01분


코멘트
방화와 폭력이 난무했던 지난달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가 끝난 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22일 폭력 시위는 우발적 사고”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이 24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연맹 등 전국 5개 지역의 사무실 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압수수색에서 불법 시위를 사전에 계획했음을 보여 주는 ‘시위계획서’가 나왔다.

이 계획서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청 진입을 시도하고 도청 행정업무에 압박을 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2일 폭력 시위는 우발적 사고가 아니란 얘기다.

범국본 측은 29일에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포함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했다.

김철주 경찰청 경비국장은 집회 금지 이유를 설명하면서 “22일 불법 폭력 집회가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고 집회를 열겠다는 사람들도 비슷한 사람들이다.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범국본 측을 믿을 수 없다는 것.

경찰이 집회를 불허하자 범국본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 권리인 만큼 집회를 강행하겠다. 비폭력 평화 집회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9일 집회 때 시위대 1500여 명은 서울 을지로입구로 몰려가 롯데백화점 앞 8개 차로를 불법 점거했다. 이 일대는 2시간가량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달라질 게 없다”던 김 국장의 말 그대로였다.

경찰청은 9월 27일 “도심 교통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집회는 허가해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과거의 불법 폭력 시위 전력을 교통방해 우려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한국노총이 “평화 집회의 전범(典範)을 보이겠다”고 밝힌 25일 서울광장 대규모 집회는 금지하지 않았다. 집회 현장에 시위 진압경찰을 배치하지도 않았다. 한국노총은 평화 집회로 약속을 지켰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노총은 그동안 폭력 시위를 한 적이 많지 않아 믿고 집회를 허가해 줬다”고 말했다.

불법 폭력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들은 경찰이 집회를 불허할 때마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하기보다 경찰과 국민에게 준법 집회를 할 것이라는 신뢰부터 먼저 심어 줘야 할 것 같다.

이종석 사회부 w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