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논술에 대한 오해 풀기(4)

  • 입력 2006년 11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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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은 논술 대비능력이 있나?

최근까지 큰 반성 없이 퍼져 있는 논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공교육은 논술을 대비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이가, 심지어는 공교육 종사자 중 상당수도 ‘공교육은 논술을 대비할 수 없다. 그래서 논술이 강화되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선 공교육이 논술을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은 성급한 생각입니다. 가끔 30대 싱글을 만나면 사람들이 농담조로 질문합니다. “결혼을 안 하신 것입니까, 못 하신 것입니까?” 능력은 있지만 혼자 사는가, 아니면 능력이 없어서 결혼을 못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공교육에도 비슷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논술을 대비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안 한 것인지.

지금까지 공교육이 논술 대비를 안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개별 학교나 교사가 노력한 적은 있지만 공교육 체계 전체가 본격적으로 논술에 진지하게 접근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논술 교육에 대한 정책적, 제도적 접근이 시작되면서 이제야 공교육 종사자 전체가 논술에 대해 진지한 접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교육이 논술을 대비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이제부터 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당연한 듯 공교육은 논술을 대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진리인 양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진지한 접근만 하면 공교육이 논술을 대비할 수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 현실로 존재합니다. 기회 있을 때 소개하겠지만 공교육 내에서도 질 높고 효과적인 논술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가 이미 상당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이 논술 교육을 제대로 담당할 수 있다는 것도 검증되지 않은 생각입니다. 사교육 안에도 진지하게 논술 교육에 접근하는 능력 있는 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사교육이 전체적으로 논술 교육을 잘 담당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입니다. 이런 측면은 있습니다. 어떤 불임 주부가 불임 치료약을 비싼 값에 먹고는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축하의 말을 전하자 그 주부는 약값이 아까워 임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으니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효과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교육에서 논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반례가 존재합니다.

최근 A대학의 한 출제위원의 예입니다. 논술 문제 출제를 마치고 혹시 사교육의 자료나 교육 내용에 유사한 문제가 있을까봐 유명 학습 사이트들의 A대 논술 전문 온라인 강의를 이 잡듯이 뒤져보았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이트의 어떤 강좌에도 A대 논술에 대한 변변한 예상문제 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있는 문제라고는 A대학의 기출문제 몇 개와 이와 주제가 비슷한 다른 대학의 기출 문제들을 대충 분류해서 배치해 놓은 것이 전부이고, 자료도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공개된 자료를 편집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공교육 교사들이 만든 교육청 자료에 비하면 턱없이 부실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논술 사교육의 현주소입니다. 대학 논술 예상문제 하나 제대로 출제할 능력을 갖춘 인력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사교육이 논술을 대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정당할까요?

공교육과 사교육이 ‘보완’의 관계가 아닌 ‘경쟁’의 관계여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한번 따져 보지요. 공교육과 사교육 중 누가 더 논술 교육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요? 공교육이 진지하게 접근하여 노력할 경우 많은 사람의 예상과는 달리 사교육보다는 공교육이 더 유리하다는 답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논술에는 장기적이고 단계적 교육이 필요하다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전제 때문입니다. 사교육은 구조상 장기적 단계적 교육을 하기에 불리합니다. 우선 수강료를 한두 달 단위로 받아야 합니다. 그 말은 교육 수요자에게 한두 달 단위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두 달 단위로 무언가 향상된 내용을 보여 주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항상 긴장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지만, 장기적 과정을 밟아야 효과를 볼 수 있는 논술 교육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장기적 교육이 되려면 예를 들어 같은 반이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함께 단계를 밟아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매달 새로운 학생이 오면 받지 않을 수 없는 학원에서는 이렇게 장기적으로 단계적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원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단계별 접근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순환적인 프로그램이 소재만 바뀌면서 반복되는 성격이 강합니다.

더구나 논술 교육은 글에 대한 지도가 필수적이기에 인건비 부담이 높은 사업 영역입니다. 사업 이익의 관점에서는 선호되기 힘든 영역입니다. 결국 대규모 사교육업체가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서 체계적인 논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투자액을 회수할 가능성이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낮기 때문입니다.

공교육에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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