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펄에서 ‘과학’을 캐다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2시 56분


10일 제14회 한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 과학동아리 활동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전남 고흥군 동강중학교 권희철 군, 송재겸 교사, 김다희 양(왼쪽부터). 사진 제공 전남 고흥군 동강중
10일 제14회 한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 과학동아리 활동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전남 고흥군 동강중학교 권희철 군, 송재겸 교사, 김다희 양(왼쪽부터). 사진 제공 전남 고흥군 동강중
농촌 중학교, 그것도 전교생이 66명인 미니 중학교. 과학경시대회와는 선뜻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전남 고흥군 동강면 동강중학교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전국의 각종 과학경시대회를 휩쓸고 있다.

고흥반도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이 학교는 한때 전교생이 1200명이 넘었지만 탈농의 여파로 여느 시골 학교처럼 학생 수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학교의 질은 오히려 높아져 ‘과학명문학교’로 새로 태어났다. 2000년 이후 각종 과학경시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이 학교 권희철(15·2년) 군과 김다희(15·2년) 양, 송재겸(49) 교사는 10일 제14회 한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 과학동아리 활동 발표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권 군과 김 양은 이번 대회에서 ‘생태기행을 통한 내 고장 고흥반도 해안선 탐사’를 발표했다. 8명의 과학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165km에 이르는 해안선을 한 걸음 한 걸음 빼놓지 않고 탐사하면서 고흥반도 생태의 모든 것을 30쪽짜리 보고서에 담았다.

권 군 등은 이 보고서에서 고흥반도 자연습지에 서식하는 조류는 총 73종에 1만7274개체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권 군은 “쌍안경을 들고 다니며 휴일과 방학에 친구들과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며 “우리 고장 연안습지의 조류 다양성과 갯바위에 붙어사는 생물의 서식조건을 밝혀낸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과학경시대회 수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제13회 한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에서 ‘학교 주변 면단위 생태 탐사’로 은상을 받았고 2000년 8회 대회 때는 금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말에는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주최한 청소년환경대회에서 단체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영예를 안기까지에는 송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학교 측의 지원이 밑바탕이 됐다. 1979년 이 학교에 부임한 송 교사는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뽑아 동아리를 만들었다.

학교 주위에 널려 있는 게 탐구 대상이라고 여긴 그는 틈나는 대로 학생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다.

습지로 날아드는 새들을 관찰하게 하고 일지를 쓰도록 했다. 어류도감에 나와 있는 개펄 생물을 찾아 생태를 연구하고 서식조건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연구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무수히 봐 온 것이지만 책을 통해 배우고 현장에서 체험학습을 하면서 바닷가 생태계에 눈을 뜨게 됐다.

학교 측은 재정 여건이 충분치 않은데도 탐구활동을 돕기 위해 과학교과실, 실험실, 준비실을 만들어줬다. 이런 노력으로 농촌학교로는 드물게 1996년 전남도교육청 과학시범학교로 지정되기도 했다. 송차자 교장은 “시골의 학교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준 교사와 학생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흥=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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