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쇠러 보냈는데…” 외아들 잃고 절규

  • 입력 200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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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29중 추돌 11명 사망3일 오전 7시 42분경 경기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에서 서울방면으로 향하던 화물차와 승합차, 차량 트레일러 등 29대가 연쇄 추돌하면서 불이 나 11명이 숨졌다. 화염에 그을린 사고 차량들의 찌그러진 모습이 처참했던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해 주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서해대교 29중 추돌 11명 사망
3일 오전 7시 42분경 경기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에서 서울방면으로 향하던 화물차와 승합차, 차량 트레일러 등 29대가 연쇄 추돌하면서 불이 나 11명이 숨졌다. 화염에 그을린 사고 차량들의 찌그러진 모습이 처참했던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해 주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3일 오전 29중 연쇄추돌사고가 발생한 경기 평택시 포승면 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면의 서해대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 사고 발생 후 출동한 견인차들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사고 차량들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3일 오전 29중 연쇄추돌사고가 발생한 경기 평택시 포승면 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면의 서해대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 사고 발생 후 출동한 견인차들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사고 차량들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에서 29중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해 11명이 숨지고 54명이 다쳤다. 3일 오전 7시 42분경 경기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서울방면 3차로에서 25t 덤프트럭이 앞서 가던 1t 트럭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았다. 이어 뒤따르던 승합차와 차량 운반 트레일러, 버스 등 27대가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차량 12대에 화재가 발생해 전소하면서 김광민(39) 씨와 송민구(13) 군 등 11명이 숨지고 이모(38·여) 씨 등 54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사고는 가시거리가 50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낀 데다 첫 추돌사고 후 곧바로 안전조치가 뒤따르지 않아 연쇄 추돌로 이어졌다. 서해대교 구간 서울방면은 오후 3시 반경까지 전면통제됐다.》

[화보]당진소방서 119 구급대가 촬영한 서해대교 사고현장

[화보]전쟁터나 다름없는 아수라장

추석 연휴를 맞아 친정 나들이에 나섰다가 외아들을 잃은 부부는 말없이 그저 눈물만 흘렸다.

아침잠이 많아 늘 꾸중을 듣던 송민구(13) 군은 3일에는 다른 때보다 훨씬 이른 오전 5시 15분경 잠에서 깼다. 서울 외가댁에 간다는 설렘 때문에 잠을 설친 것.

민구 군과 어머니 김미(38) 씨는 전북 군산에서 오전 6시 15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1시간 반 뒤 깜빡 잠이 든 순간 서해대교를 건너던 버스는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민구 군은 두개골이 파열돼 숨지고 김 씨는 얼굴과 가슴 등을 크게 다쳤다.

김 씨가 입원한 경기 평택시 안중 백병원으로 달려온 민구 군의 아버지 송현성(46) 씨는 아침에 인사를 나눈 아들이 숨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연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추석 때 전북 군산의 본가에서 차례를 올려야 하지만 김 씨가 6월 배드민턴을 치다 다리 인대가 파열돼 집안일을 하기 힘들자 송 씨는 “이참에 푹 쉬었다 오라”며 김 씨에게 추석 연휴동안 민구 군과 함께 친정에 가 있도록 했다.

송 씨는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있는 외가댁에 놀러갔는데 지난 여름방학 때는 외가댁에 가지 못해 민구가 오늘을 무척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는 “어젯밤 옷가지를 챙기지 않고 컴퓨터 게임을 하는 민구를 심하게 야단쳤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 김 씨는 “민구가 버스 뒤쪽에 앉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그냥 앞쪽에 앉도록 했다”며 “내가 민구를 살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사고버스에는 13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는데 뒤쪽에 앉은 승객들은 깨진 창문을 통해 쉽게 대피할 수 있었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 중앙장례식장에선 형을 잃은 김광수(33) 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광수 씨는 경기 화성 앞바다의 무인도로 낙지를 잡으러 간 큰형 광순(44) 씨를 만나기 위해 작은형 광민(38) 씨와 함께 길을 나섰다. 하지만 광민 씨는 찌그러진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화염에 휩싸여 숨졌다.

광수 씨는 “어머니가 ‘낙지철이라 큰형이 같이 명절을 보내기 힘드니 동생들이 형을 찾아가 일을 도와주라’고 해 함께 큰형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작은형이 ‘나 좀 꺼내 달라’며 비명을 질렀는데 결국 형을 구해내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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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당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사망자 명단

◇평택 안중 백병원(7명)

송민구(13), 김희순(68.여), 박남선(73), 성기문(61), 김분옥(55.여), 박영숙(46.여), 김판건(19)

◇화성 봉담장례식장(2명)

김재복(47), 김선숙(36.여)

◇천안 단국대병원(1명)

김기호(26)

◇인천 사랑병원(1명)

김광민(39)

■ 사고 발생서 구조까지

▽안개 속 연쇄 추돌=이날 오전 1시부터 서해대교 일대에는 안개주의보가 발령됐다. 25t 덤프트럭이 첫 추돌사고를 냈을 때에는 별 피해가 없었으나 덤프트럭이 2차로로 튕겨 나가면서 뒤에서 달려오던 승합차가 2차 추돌사고를 냈다.

1차로를 달리던 트레일러는 1, 2차로 중간에 멈춰 선 승합차에서 승객들이 내리는 것을 발견하고 급정거했으나, 이번에는 1차로에서 뒤따르던 버스가 트레일러를 추돌했다.

이후 사고 사실을 모르고 달리던 차량들은 1, 2, 3차로에서 잇따라 ‘퍽’ 소리를 내면서 앞 차량을 들이받았다. 29대의 사고 차량은 400여 m의 1∼3차로를 꽉 메웠다.

사고를 당한 승객과 운전자들은 차 밖으로 나왔으나 무섭게 달리는 차량들 사이에서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차량 밖에 서 있다가 연쇄 추돌로 튕겨진 차량에 부딪혀 다친 사람도 상당수였다.

연쇄 추돌이 발생하자마자 덤프트럭 뒤편 차량에서 엔진이 떨어져 나가면서 연료탱크가 폭발해 불이 났고 연쇄적으로 ‘펑,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차량 12대로 삽시간에 불이 번졌다. 사고 현장은 8m 높이의 불기둥과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른 가운데 차량 안에 갇힌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로 뒤덮였다.

▽안전시설물 없어 인명 피해 커져=첫 추돌사고를 낸 덤프트럭을 추돌한 승합차 운전자 노효자(41·여) 씨는 시속 50km 정도로 서행하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트럭이 나타나 급정거했지만 추돌을 피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차에서 빠져나와 동승자 탈출을 도우며 도로에 서 있는데 ‘쌩’ 하고 과속으로 달리는 차들 때문에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라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서해대교 위에는 소화전이나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 운전자나 승객들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초기에 화재가 진압되지 못하면서 차량들은 강한 불길에 휩싸였고, 사망자 11명 중 6명은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남녀 구별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

연쇄 추돌이 일어나면서 갓길까지 사고 차량이 뒤엉키면서 구급차량과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웠던 것도 인명 피해를 키웠다.

경찰은 덤프트럭 운전사 이모(48) 씨가 안개 속에서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고 운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이 씨를 상대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안개 속을 질주하던 차량들이 비상등도 켜지 않은 탓에 뒤차들은 추돌사고가 난 줄도 몰라 대형 연쇄 추돌로 이어졌다고 사고 운전자들은 전했다.

▽의인들의 활약=그나마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의인(義人)’들이 있어 피해를 줄였다.

트레일러 운전사 홍성재(40) 씨는 이날 충남 서산시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수출용 차량을 싣고 경기 평택항으로 향하던 중 추돌사고를 당해 오른쪽 팔을 크게 다쳤다. 하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트레일러 뒷바퀴에 끼인 한 아주머니를 빼내 트레일러 앞쪽으로 옮긴 데 이어 2차로에 있던 60대 부부를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홍 씨는 화물차에 깔린 4명 중 60대 여성 2명을 끌어냈으나, 불길이 화물차를 집어삼켜 나머지 2명은 구하지 못했다.

승객 13명을 태우고 전북 군산시에서 서울로 향하던 버스에서도 한 30대 청년이 운전사와 승객을 구했다.

평택=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당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화보]당진소방서 119 구급대가 촬영한 서해대교 사고현장

[화보]전쟁터나 다름없는 아수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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