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2008 논술예시]교과서 적극활용 ‘공교육 힘싣기’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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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28일 발표한 2008학년도 논술 예시문항은 수험생들이 교과서의 지식을 얼마나 이해해 종합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문제로 평가됐다. 또 지문 상당수가 교과서에서 출제돼 수험생들에게 심리적으로 위안이 될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 통합교과형 논술이 본고사 논란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됐으나 서울대가 교육인적자원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을 ‘지혜롭게’ 지켜 논란을 피해갔다는 반응이다.》

▽공교육 정상화에 역점=서울대는 “예시문항들은 단순히 개별 교과의 지식을 측정하는 ‘결과 중심형’이 아니라 교과과정의 내용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심형’ 시험”이라며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출제했다”고 말했다.

단순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기르고 독서 토론 등의 활성화를 통해 현 중등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설명이다.

▽교과서 지문 활용=인문계 논술 예시문은 현행 단순 논술형 문제를 3시간 내에 2500자 내외로 서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복수 문항의 문제를 300∼1600자로 서술하도록 했다. 특히 처음 도입된 자연계 논술의 경우 분량 제한 없이 서술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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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제시문이나 문제의 주제로 최대한 활용된 것도 특징이다. 이번 예시문항의 인문계 1번과 3번의 경우 고등학교 도덕이나 사회 교과서의 내용이 제시문으로 그대로 발췌됐다.

인문계 논술의 경우 주어진 통계나 조건 등의 자료를 해석, 응용, 평가해 논제를 해결하는 문항도 포함될 수 있다.

자연계열에서는 단순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수리적 과학적 사고력을 묻는 문항을 출제하며 필요에 따라 관련 공식이나 참고자료도 제시된다.

이는 지식의 유무가 아니라 개념과 원리를 적용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울대는 설명했다.

▽서울대, “계속 수정 보완”=서울대 입학관리본부는 “수험생들이 쉽게 친근감을 갖게 하기 위해 교과서에 나온 지문을 그대로 활용했다”며 “모범 답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험생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내년 상반기 이후 모의논술고사를 실시해 문항의 난이도를 조정하고 교육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논술문항을 수정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유웨이중앙교육 강신창(姜信昌) 논술팀장은 “제시문 길이가 짧아지고 교과서 제시문이 많아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며 “그러나 이제는 논술의 형태보다 난이도를 놓고 본고사 시비가 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 일선고교-대학 반응

“어떤 논술책이 좋을까”
서울대가 28일 발표한 2008학년도 논술 예시문항은 고교 교과서 내용을 예시문으로 활용하는 등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서울시내 대형서점에서 학생들이 논술 교재를 고르고 있다. 김미옥 기자

서울대가 28일 발표한 ‘2008학년도 논술고사 예시문항’에 대해 고교 교사들은 “교과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고 내용도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논제의 수준이 높아 일반 고교의 수업시간에 다루기는 어렵지만 학교 교육으로도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통합 사고력이 기본=교사들은 서울대가 교과서 내용을 제시문으로 많이 다루는 등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애쓴 점을 높이 평가했다.

교과지식 측정 위주의 본고사 형태에서 벗어나 인문계열은 사회과목, 자연계열은 수학과 과학과목의 교과 내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인문계 2번 문항(수학Ⅰ 확률)과 자연계 1번 문항(수학Ⅰ 순열과 조합), 2번 문항(수학Ⅱ 이차곡선) 등도 풀이 능력이 아닌 복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 있다는 것.

한양대사범대부속여고 이남열 교감은 “비판적 사고력과 논증적인 표현력을 측정하고자 한 점에서 논술의 본령을 지키고 있다”며 “고교에서도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연계해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도 “교육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변별력 있고 고교에서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라고 평가했다.

▽일부선 “수업만으론 어렵다”=학업능력이 제각각인 학생을 한반에서 가르치는 기존의 수업 방식으로는 서울대 논술 예시문항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성남고 강호영(국어) 교사는 “서울대 지망생을 위해 수업 방식을 바꿀 수는 없다”며 “방과 후 교과활동 시간에 최상위권 학생을 따로 모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동고 김모 교사도 “인문계 2, 4번 문항과 자연계 1, 2번 문항은 심층면접 유형으로 상중하 학생을 모아 가르치는 학교 수업으로 소화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예전의 본고사 형태로 고교 교과과정을 파행적으로 이끌어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섭(李鍾燮)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교과서가 논술 준비에 최고의 기본 교재인 만큼 교과서가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 학생들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성주 기자 stein33@donga.com

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교육부 ‘논술 가이드라인’ 위반여부 즉답회피

교육인적자원부는 28일 서울대가 발표한 2008학년도 논술고사 예시문항이 논술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피하며 여론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예시문항은 논술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니지만 필요할 경우 서울대가 참고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면 수정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당초 안보다 상당히 개선돼 우려했던 수준은 아니다”며 “그러나 일선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교육부는 △학교 현장에서 본고사로 인식하지 않아야 하고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준비가 가능해야 하며 △불필요하게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출제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학교 현장이 본고사로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논술 여부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최상위권 학생을 선발하는 서울대 기준에 모든 학교가 만족하도록 출제하라는 교육부의 요구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인문계열은 제시문이 대부분 교과서에서 출제됐으나 확률 문제와 그 풀이 과정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라는 문제는 수리 형태에 가까워 인문계 논술로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서울대 김경범(金京範) 전문위원은 “계산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풀이 과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논술이 아닌 구술면접을 실시해 온 자연계열의 논술은 수학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풀 수 있다는 반응이다. 그래서 논술이 아니라 구술면접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서울대는 “기본 개념과 원리를 충실히 공부한 학생이면 무리 없이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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