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빨리 나으세요, 달동네 천사할머니”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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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미스투라 할머니는 도시 빈민의 영원한 친구이자 보호자였다. 모국인 이탈리아에서 편안한 여생을 지내길 거부하고 한국에 뼈를 묻길 원한다는 안젤라 할머니가 한국외국어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의 모습. 사진 제공 한국외국어대
안젤라 미스투라 할머니는 도시 빈민의 영원한 친구이자 보호자였다. 모국인 이탈리아에서 편안한 여생을 지내길 거부하고 한국에 뼈를 묻길 원한다는 안젤라 할머니가 한국외국어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의 모습. 사진 제공 한국외국어대
“추석 때마다 이웃들에게 한복을 건네주시며 환히 웃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달동네인 서울 관악구 신림10동 주민들은 추석이 되면 고단한 삶을 푸근하게 보듬어 줬던 벽안(碧眼)의 ‘천사 할머니’를 떠올린다.

20여 년간 추석 때마다 어려운 이들을 불러 모아 음식이며 옷가지를 건네주던 ‘달동네 천사’ 안젤라 미스투라(한국명 안재란·75) 할머니가 병마로 이 마을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이탈리아인인 안젤라 할머니는 26세였던 1956년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으로 한국에 국제가톨릭형제회를 설립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입국했다.

안젤라 할머니가 처음 살던 곳은 서울 중구 명동. 틈틈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던 안젤라 할머니는 1984년 ‘어려운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며 당시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신림동으로 이주했다.

그는 신림동 328에 방 한 칸을 얻었다. 안젤라 할머니는 궁핍한 생활에 갈 곳 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모아 공부방을 운영했다. 매년 추석에는 어려운 이웃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음식을 대접하고 한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 1965년부터 한국외국어대 이탈리아어과 교수로 재직하며 모은 재산을 털어 소년소녀가장을 데려다 키웠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활기찬 모습으로 이집 저집을 오가며 빈민들의 상담역을 자처하던 안젤라 할머니가 기운을 잃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1995년부터. 주변 사람들의 간곡한 권유로 병원을 찾은 그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엄습해 오는 병마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안젤라 할머니는 이듬해 이 지역이 재개발되자 분양받은 임대아파트에 놀이방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봤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그는 결국 경기 부천시 가은병원에 입원했다.

안젤라 할머니의 마지막 꿈은 50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 땅에 묻히는 것이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주치의와 전용 병실을 마련해 놓고 귀국을 종용했을 때도 “내 꿈은 어려운 이들과 함께 살다 한국 땅에 묻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자인 한국외국어대 한성철(韓聖哲) 교수는 “선생님은 어려운 시절에 우리나라에 와서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이제는 병든 몸밖에 남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대구가톨릭대 김효신(金孝信) 교수도 “학생 시절 선생님과 함께 신림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봉사의 참뜻을 배웠다”며 “안젤라 선생님은 삶의 지표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병문안을 갔지만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만류로 안젤라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 김 교수는 “추석 때만 되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면서 활짝 웃던 선생님이 떠오른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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