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소법 개정이후 무엇이 달라지나

  • 입력 2005년 5월 4일 03시 22분


코멘트
김승규법무-한승헌위원장 긴급회동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오른쪽)과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운니동의 한 음식점에서 긴급 회동했다. 두 사람이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의 해결책을 마련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
김승규법무-한승헌위원장 긴급회동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오른쪽)과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운니동의 한 음식점에서 긴급 회동했다. 두 사람이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의 해결책을 마련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와 검찰이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에 대해 타협점을 찾으면서 앞으로 형사재판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게 됐다.

무엇보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이 강화된다. 검찰은 피고인의 자백에 치중하던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을 개발해야 하는 등 숙제를 안게 됐다.

새 개정 초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형사재판 변화를 점검해 본다.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부정=현재 이뤄지고 있는 형사재판의 대부분은 ‘서류 재판’이다. 검사가 피고인이나 참고인을 조사해 진술을 기록한 뒤 이를 법정에 제출한다.

현행 형소법은 피고인이 진술조서의 내용을 부인해도 진술이 강압에 의해 이뤄졌다는 등의 반증이 없으면 진술조서에 대해 증거능력(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따라서 판사는 이 ‘증거서류’(진술조서)를 보고 신빙성 여부를 판단해 유죄 또는 무죄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사개추위의 개정 초안은 피고인이 진술조서 내용을 부인하는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도록 했다. 따라서 검찰 조서는 법정에서 원천적으로 증거로 쓰일 수 없다.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게 되는 셈이다.

대신 검사와 검찰 수사관, 경찰관은 법정에서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조서 내용)을 증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검사나 경찰이 조사 내용을 증언하기 위해 ‘증인’으로 법정에 서는 새로운 풍경이 일상화할 전망이다.

또 주로 제3자의 진술로 진실이 밝혀지는 뇌물사건 등의 수사는 적지 않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녹음·녹화물의 증거능력 인정=사개추위는 검찰이 진술조서를 대신할 증거물로 인정해 달라고 한 녹음·녹화물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를 하고 4일 최종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 문제는 검찰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녹음·녹화물의 증거능력 인정도 어디까지나 제한적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많다. 검찰의 신문조서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이유는 △조서 작성자의 가치관이나 의도가 반영될 수 있고 △진술 당시 피고인의 감정 상태, 목소리 톤 등을 담아낼 수 없는 기록의 한계가 있으며 △고문이나 강압 회유 등 조서에 나타나지 않은 사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녹음물이나 녹화물은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 한계는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검사가 피고인을 압박하거나 회유한 상태에서 녹음이나 녹화 내용을 조작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사개추위의 판단이다.

▽피고인 신문은 증거조사 이후로=사개추위는 법정에서 검찰의 피고인 신문 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형소법 초안과 달리 신문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신문 시기를 증거조사 절차 이후로 하기로 했다.

사개추위는 그동안 검찰의 신문 제도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피고인에 대한 추궁으로 변질돼 왔다고 봤다. 이는 제3자적 관점에서 사건의 실체를 판단해야 할 재판부에 처음부터 ‘피고인은 나쁜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는 만큼 원칙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만큼 사개추위의 타협 방안은 검찰에 한 발 양보하면서도 신문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을 꾀했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사개추위가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론에 치우쳐 너무 급하게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도출된 합의안은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조화시킨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개추위 형소법 개정 문제 파문 일지▼

△1월18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출범

△4월15일 사개추위, 시민참여재판제도에 대한 공청회 개최

△4월23일 사개추위, 형소법 개정 초안 마련

△4월26일 김승규 법무부 장관, 사개추위 파견 검사와 긴급 대책회의

△4월27일 김종빈 검찰총장, 수도권 지역 검사장 회의 긴급 소집

△4월28일 김종빈 검찰총장, 형소법 개정되면 부패수사 못할 것 발언

인천지검 순천지청 천안지청, 평검사 회의 개최

△4월30일 사개추위, 전문가 합동 토론회 개최

△5월 2일 서울중앙지검 평검사 90여명 긴급 회동, 전국 평검사 회의 개최 추진

△5월 3일 한승헌 사개추위 공동위원장-김승규 법무부 장관 회동, 형소법 핵심쟁점 타결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