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아빠 야근, 엄마 신문배달 나간 3남매 화재 참변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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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인입니다. 일하러 나가지만 않았어도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보내진 않았을 텐데…. 얘들아, 미안해. 얘들아, 미안해.”

9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 강동성심병원 영안실.

아직 사진도 내걸지 못한 3남매의 빈소에 새벽일을 나갔던 차림 그대로 달려온 어머니 정모 씨(37)의 오열은 그칠 줄 몰랐다.

정 씨가 일을 나간 이날 오전 5시 10분경 강동구 천호4동 전셋집에서 자고 있던 큰딸(11)과 8세, 6세의 두 아들이 갑작스러운 화재로 모두 목숨을 잃었다.

“친구야…”
9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숨진 3남매의 친구들이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을 찾아 조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거실에서 발생한 누전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날 화재로 작은 방에서 사이좋게 자고 있던 세 아이는 연기에 질식해 참변을 당했다.

화재를 신고한 이웃 주민 박모 씨(50)는 “바깥이 시끄러워 나가보니 정 씨 집에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핏 사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아이들만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집 안에 아이들만 있었던 것은 경찰인 남편의 박봉 탓에 정 씨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러 갔기 때문. 정 씨는 10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아이들의 아버지인 서울지방경찰청 특수기동대 소속 금모 경장(36) 역시 8일 밤부터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영등포구 대영빌딩 인근에서 시설 경비를 하느라 집을 비운 상태였다.

금 경장의 동료인 윤형균 순경은 “금 경장은 최근 노동계의 ‘동투(冬鬪)’ 때문에 며칠씩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며 “평소 성실하고 불평 한마디 없던 그에게 이런 비극이 생겨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9일 오후부터 허준영(許准榮)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해 금 경장의 동료 등 많은 조문객들이 빈소를 찾았다. 특히 큰딸이 다니던 강동초교 4학년 학생들은 함께 헌화를 하다 울음을 터뜨려 빈소를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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