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공사 잠정중단… 정부-환경단체 득실공방

  • 입력 2004년 8월 26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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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고심 판결 때까지 공사를 중단키로 결정된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대구∼부산) 중 천성산 구간에 대한 환경영향 공동 재조사가 이르면 다음 달에 실시될 전망이다. 환경부와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26일 정부과천청사 환경부 장관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고속철도 터널 공사가 천성산의 동식물 및 고산습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양측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전문가 검토’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환경영향평가 재실시가 현행법상 불가능하므로, 환경영향평가에 준하는 재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환경단체의 요구를 환경부가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천성산에 대한 재조사가 실시되면 그 결과에 따라 고속철도 노선이 바뀔 수도 있어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또 오랜 갈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공사 재개 결정이 내려질 경우 공사 지연에 따른 막대한 사회 경제적 비용은 모두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기존 노선을 고수하려는 건설교통부는 공사 지연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걱정하고 있다. 건교부는 25일 공사를 일단 중단시켰다. 이와 관련해 항고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26일 “가능하면 재판을 연내에 끝내겠다”고 밝혔다.

건교부는 연내에 “공사를 계속해도 된다”는 판결이 나와 공사가 6개월 이상 지연되지 않는다면 2010년까지 2단계 공사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공사가 이보다 더 지연돼 예정보다 1년 이상 늦어질 경우 매년 약 2조원이 넘는 사회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건교부는 보고 있다.

법원 판결이 공사를 재개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내려지거나, 천성산에 대한 전문가 검토 결과 공사를 하지 말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오면 경제적 손실은 더 커질 전망이다.

고속철도 2단계 노선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공사가 장기간 표류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고속철도 2단계 구간은 빨라야 2016년에나 개통이 가능하며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은 18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건교부는 추산했다.

건교부는 또 “국책사업이 시민단체의 압력에 밀려 표류하는 나쁜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사회 경제적 비용을 분석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우선 “22곳의 습지, 30여종이 넘는 법적 보호동식물이 사는 천성산의 가치는 고속철도 노선 변경에 드는 비용보다 크면 컸지 절대 적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또 ‘1년에 2조원 손실’이라는 건교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계산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며, 설혹 경제적 손실이 크더라도 그것은 제대로 환경평가를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려 한 건교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녹색연합 서재철 자연생태국장은 “건교부가 자료만 공개한다면 우리도 천성산 보전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또 공사 중단으로 인한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건교부와 함께 조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서 국장은 이어 “그러나 구체적인 데이터도 제시하지 않고 막연히 ‘경제적 손실이 크니 공사를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천성산은?▼

해발 922m.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무제치늪을 비롯해 밀밭늪 화엄늪 등 22개의 습지가 흩어져 있는 한국 최대의 습지 지대다. 봄에는 철쭉이 만발하며 산 아래 4km 정도 길게 계곡이 뻗어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산에서 1000명의 대중에게 설법해 모두 득도하게 했다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 이름붙여졌다.

▼도롱뇽소송은?▼

2003년 10월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들은 ‘천성산 도롱뇽’ 명의로 고속철도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신청을 울산지법에 냈다. 원고를 도롱뇽으로 정한 것은 도롱뇽이 천성산의 습지를 상징하기 때문. 터널을 뚫으려면 산에 있는 물을 빼게 돼 습지동물인 도롱뇽에게 치명적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울산지법은 올해 4월 “도롱뇽과 사찰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지율스님 등은 이 결정에 불복, 부산고법에 항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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