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질 경찰’아들 글 인터넷서 화제

  • 입력 2004년 8월 4일 1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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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에는 ‘발길질 경찰관’ 이 모 경사(45)의 아들이라고 밝힌 한 대학생이 경찰청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이 화제다.

편지에는 ‘살인마’ 유영철에게 달려드는 피해자 가족을 발길질로 제지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21살 아들의 착잡한 심경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그는 글 첫머리에“아버지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고 항상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만이 제 기억에 있다”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버지를 욕해도 저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뛰어드시는 그 짧은 순간 아버지는 범인을 보호한 다기 보다는 또 놓치면 끝장이라는 생각, 다치기라도 하면 징계수위가 높아지겠지 라는 생각에 발이 나가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고 아버지를 변호했다.

즉 수사 초기 한 번 잡았던 범인이 도주하도록 방치한 것과 범인의 자백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 경찰’이라는 비난 외에도 수사 종결 후 감찰조사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또 한번 범인을 놓치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발이 나갔다는 것.

그는 경찰청장을 향해 “그 순간 피해자 가족이 범인에게 해를 입히도록 놔두었어야 하나요? 그럼 지금처럼 아버지 혼자 온갖 비난을 안 받으셔도 되는 건가요? 직무유기가 되어 거기 있던 모든 경찰에게 비난이 돌아갔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의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지만 경찰청장님께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하지는 않겠다”며 “그러면 스스로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는 “예전의 아버지 모습을 보고 싶다. 활기차게 출근하셨다가 집에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희망을 밝힌 뒤 “힘들어하시는 아버지께 한 마디 위로의 말도 못 건네는 못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함께 보낸다” 며 글을 맺었다.

한편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 경찰서에서 연쇄 살인 유영철을 호송하던 중 피해자 가족을 발길질해 물의를 빚은 이 모 경사는 인사조치 돼 다른 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다.

이 경사는 4일 동아닷컴과의 전화통화에서 “동료들이 인터넷에서 글을 읽고 전화를 해 줘 알았다”며 “아직 글을 읽어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 경사는 “큰 아들이 내성적이라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며 “아마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쓴 모양이다”고 했다.

이 경사는 “유족들에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 최근 그 분들이 저를 용서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썼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도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대기발령중인 이 경사는 “자숙하고 있다”며 “가족들 보기가 미안해 퇴근 후 수유리 집 근처 산에서 시간을 보낸 후 밤늦게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글 전문

경찰청장님께- 저는 이모경사의 아들입니다..

저는 요사이 아버지의 이름 보다는 '발길질 경찰관'으로 불려지고 있는 우리 아버지의 21살의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제가 태어나서부터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중에 요즘처럼 어깨가 쳐지시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풀죽어 계시는 모습을 뵌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경찰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고 항상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만이 제게 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아버지를 욕해도 저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자랑스럽습니다.

경찰청장님!

아버지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뛰어드시는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보름이 넘게 계속되는 밤샘조사에 사채발굴 현장을 뒤지며 팔과 다리에는 연일 나뭇가지에 긁혀서 상처가 나도 그건 경찰의 할 일이니까 당연한 거고 연일 매스컴에서는 범인의 자백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 경찰'이라는 비난과 수사가 종결되는대로 감찰조사가 시작될거라는 보도와 수사초기에 범인을 놓쳤다가 잡은 사건까지..

그 짧은 순간에 무엇을 떠올리셨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 순간에 범인을 보호한다기 보다는 또 놓치면 끝장이라는 생각, 다치기라도 하면 징계수위가 높아지겠지라는 생각에 발이 나가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연일 보도되는 비난과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보며 제가 피해자의 어머니를 원망하면 저희 어머니는 "너는 가족이니까 무조건 아버지 편일수도 있다"고 하시며 죽은 딸을 가진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을 해보라고 하셨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을 인터넷을 뒤지며 흥분하는 저를 보며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도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제가 더 걱정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식 앞에 부모는 무슨 행동도 할수 있겠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경찰청장님!

그럼 그 순간 우리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옳았을까요? 그냥 두고보아서 범인에게 해를 입히도록 놔두었어야 하나요?

그럼 지금처럼 아버지 혼자 온갖 비난을 안받으셔도 되는건가요? 직무유기가 되어 거기있던 모든 경찰에게 비난이 돌아갔을까요?

저는 지금도 아버지의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히 경찰청장님께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하지않겠습니다. 그러면 저 스스로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는게 되니까요.

그냥 예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활기차게 출근하셨다가 집에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께 한 마디 위로의 말도 못 건네는 못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함께 보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한 경찰관의 아들 올림-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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