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품행제로’와 정독도서관

  • 입력 2004년 7월 2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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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 하면 귀에서 종소리가 들린대.”

1980년대 학창시절의 추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 ‘품행제로’에서 민희(임은경)가 중필(류승범)에게 한 말이다.

영화에서 중필과 민희가 공부를 핑계 삼아 데이트하고, 처음으로 키스를 한 곳은 서울 종로구 화동의 정독도서관이다.

이곳은 원래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 서재필 등의 집터였다. 1938년 경기공립중학교(경기고)가 지어졌고 1976년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정독도서관이 들어섰다. 지금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지만 건축 당시에는 철근 콘크리트와 스팀 난방시설을 갖춘 최고급 건물이었다.

1980년대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 ‘품행제로’에서 극중 주인공인 중필(류승범)과 민희(임은경)가 첫 키스에 성공한 정독도서관 벤치. 아래 사진은 중필과 민희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영화의 한 장면. -장강명기자

영화에서 모범생 민희는 문덕고 ‘캡짱’인 중필의 손을 잡아 끌고 이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이어지는 중필의 대사.

“나 학교에서 오늘 공부 진짜 많이 했어. 7교시에 HR(특별활동)도 했다니까.”

도서관을 나올 때 중필의 얼굴에는 엎드려 자느라 책에 눌린 자국이 있다. 늦게까지 공부하니까 피곤하지 않느냐고 민희가 묻자 중필은 “습관이 돼서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학교 최고의 불량배도 이성교제는 서툴렀던 시절이었다. 정독도서관 마당 벤치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쑥스러움에 어쩔 줄 모른다.

정독도서관 마당은 실제로 조경이 어지간한 근린공원 못지않다. 도서관 건물 앞에는 분수대가 있고 널찍한 마당에는 크기가 제법 되는 연못과 원두막, 물레방아도 있다.

영화에서 중필과 민희는 정독도서관 벤치에 앉아 중필의 옷 사이즈가 95냐 100이냐를 놓고 가볍게 말다툼을 벌이다 서로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결국 키스에 성공한다 (둘이 입을 맞추는 순간 작은 종소리가 들린다).

이 벤치는 지붕에 등나무가 자라 여름에도 상당히 쾌적하고 보기 좋다. 정독도서관 장면은 8월에 촬영했기 때문에 요즘 가면 딱 영화 속의 배경을 볼 수 있다.

80년대나 지금이나 도서관에서 ‘임도 보고 공부도 하는’ 연인이 많은데 복장이나 애정 표현은 요즘이 훨씬 대담한 것 같다.

키스신을 찍을 당시 류승범은 여깡패 ‘나영’ 역으로 나온 공효진과 실제 연인 사이였다. 그래서 공효진은 자기 촬영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촬영장에 나와 애인을 기다렸다고 한다. 류승범 역시 밤샘 촬영 틈틈이 스태프와 떨어져 있는 공효진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키스신은 여러 각도에서 찍어야 하므로 오전 4시가 돼서야 촬영이 끝났다.

정독도서관을 찾는 연인들은 마당에만 있지 말고 도서관 3동 뒤편 목공소 옆으로 가볍게 산책하는 것도 좋을 듯. 지대가 높아 남산타워에서 북한산에 이르는 전망이 좋다.

정독도서관 건너편에는 서울아트시네마(구 아트선재센터)가 있으며 근처에는 경복궁, 비원,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등 가 볼 곳이 많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걸어서 7분 거리, 무료입장. 인터넷 홈페이지 http://www.jeongdok.or.kr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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