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거창 양민학살 국가배상 의무없다”

  • 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37분


6·25전쟁 중 발생한 경남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관련해 국가는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현행 법률로는 보상이 불가능하다며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국회에서 통과된 ‘거창사건 특별조치법’에 대해 최근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부산고법 민사5부(부장판사 윤인태·尹寅台)는 18일 문모씨(80) 등 거창양민학살사건 희생자 유족 40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의 1심 재판부는 2001년 10월 적극적인 진상 규명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정부는 유족에게 1인당 500만∼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었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거창사건은 1951년 2월 발생했고 학살책임자에 대한 판결도 같은 해 12월 선고된 만큼 판결 선고일로부터 3년, 사건 발생일로부터 5년을 경과해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1심 재판부가 신원권(伸寃權·억울함을 풀 수 있는 권리)을 적용해 ‘국가가 진상 규명을 소홀히 해 유족들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줬다’고 밝힌 데 대해 “이 사건과 관련해 국가나 공무원의 업무 소홀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신 재판부는 “현행법 체계에서는 거창사건에 대한 국가 배상이 불가능한 만큼 국회의 특별입법에 의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거창사건 특별조치법’이 3월 2일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정부는 같은 달 23일 국무회의에서 “사건이 재판에 계류 중이고 6·25전쟁 관련 배상법안이 잇따라 통과되면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창사건희생자 유족회 조성제(趙性濟·54) 회장은 “정부는 재판에 계류 중이라는 핑계로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을 거부하고 법원은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서로 미루는 것은 유족을 희롱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조 회장은 또 “거창사건은 책임자가 밝혀져 사법처리까지 받은 유일한 양민학살 사건인 만큼 특별법 입법을 재추진하고 대법원 상고와 헌법소원을 통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거창사건은 1951년 2월 9∼11일 3일 동안 국군에 의해 거창군 신원면 주민 719명이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살된 사건으로 같은 해 12월 군인 4명이 군사재판을 통해 사형 등의 실형을 받았지만 모두 복권됐다.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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