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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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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밤’의 시인은 이광수 김동인과 함께 대중잡지 ‘삼천리’를 발행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경쟁지인 소파(小波) 방정환의 ‘별건곤’을 따라잡아야 했다.
고심 끝에 그는 ‘지상(誌上) 미인대회’를 생각해냈다. 여성들의 상반신 사진을 응모 받아 최고 미인을 표지에 실었고 잡지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1930년대 일제하의 일이다.
1949년에는 월간지 ‘신태양’이 ‘미스 대한(大韓)’을 뽑았다.
응모자의 사진을 확대해 덕수궁 뜰에 진열해 놓고 일반인들에게 인기투표를 실시했는데, 최고 미인에는 명동의 다방 마담이 뽑혔다고.
얼굴과 몸매를 직접 보여주는 본격적인 미인대회는 전란 중인 1953년 5월 부산에서 열렸다. ‘여성경염대회’란 이름으로 중앙신문사가 주최했다.
‘키는 다섯 자 정도일 것. 얼굴은 둥그스름하고 복스러울 것. 이빨이 반듯하고 하얗게 반짝거릴 것. 현모양처감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 그게 심사기준이었다.
제1회 대회 대상은 숙명여대 재학생 강귀희에게 돌아간다.
지금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1957년 서울 명동 시립극장에서 처음 열렸다. 초대 미스코리아에게는 상금 30만환과 양단저고리 양복지 은수저 같은 부상이 주어졌다.
대회는 30년간 TV로 생중계됐으나 재작년부터 TV에서 ‘퇴출’됐다. 올해는 수영복 심사도 사라진다. 외모보다는 교양과 지성미에 더 중점을 두겠다고.
“무슨 장학생 선발대회도 아니고…”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이런 변화는 여성단체의 등쌀(?)에 못 견딘 탓도 있지만, 미스코리아의 상징성도 많이 희석돼 가는 느낌이다.
왕관을 쓰고 꽃다발과 트로피를 안은 채 눈물을 글썽이는 표정은 영락없는 ‘신파’다. 틀에 박힌 수영복과 하이힐, 특유의 사자머리는 개성과 끼를 중시하는 요즘 시대에 또 얼마나 생뚱맞은가.
“미스코리아감이네!” “미스코리아 뺨친다!” 이런 말도 왠지 싱겁다. “몸뚱이 치수로 여성을 평가한다”는 여성계의 비난조차 진부하다.
하기는 S양, H양, L양의 경우에 보듯 이제 미스코리아도 ‘벗어야’ 장사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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