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관행, 반말… 욕설… 언어폭력 더 서럽다

  • 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20분


철옹성처럼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의 조사실 입구. 외부인이 이곳에 들어가려면 인터폰으로 원하는 검사실로 연락한 뒤 안에서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한다.-박영대기자
철옹성처럼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의 조사실 입구. 외부인이 이곳에 들어가려면 인터폰으로 원하는 검사실로 연락한 뒤 안에서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한다.-박영대기자
《검찰 수사 관행,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검찰 수사 도중 잇따라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검찰의 수사가 관심을 끌고 있다. 2002년 10월 폭력조직 살인사건의 피의자 조모씨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다가 수사관의 가혹행위로 숨진 사건이 발생한 후 검찰 내부에서 수사의 적법절차를 지키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 있었고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많은 조치들이 발표되고 시행됐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피의자는 검찰 조사가 끝나면 승복하기보다 분노한다. 실제 수사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본보는 검찰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을 상대로 집중 취재해봤다. 》

최근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은 “수사관행을 재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 남상국(南相國) 대우건설 사장에 이어 박태영(朴泰榮) 전남지사까지, 검찰에서 수사를 받던 거물급 인사들이 잇따라 자살한 이후 나온 발언이었다. 실제 수사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본보는 검찰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을 상대로 집중 취재해 봤다.

▽언어폭력은 여전=취재에 응한 피의자들은 “물리적 폭력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검사들의 거친 말과 욕설 등에 대해 분노를 나타내는 피의자들은 많았다.

지난해 말 서울지검에서 수사를 받은 50대 중반의 A씨는 “서른살쯤 돼 보이는 검사한테 3시간 동안 조사받으면서 들었던 가장 점잖은 욕이 ‘개××’였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보다 더 가슴에 맺히는 일이 책상을 걷어차고 욕설과 반말을 하던 그 검사의 언행”이라고 말했다. 해당 검사는 “큰소리를 친 일은 있지만 욕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최근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B씨는 “수사 검사 중에 합리적이고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수사를 하는 검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검사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많은 검사나 수사관들은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언어폭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편이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우리가 고객 상담하듯이 조사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피의자 압박하기=피의자들은 언어폭력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검찰이 가족이나 친지의 약점을 잡아서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 검사는 “춘향이가 수청을 들게 하려면 춘향이 목이 아니라 월매 목에 칼을 씌워야 한다”고 말했다. 피의자에게서 자백을 받기 위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약점을 잡아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한 말이었다.

구속된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검찰청사 내 구치감이 엉뚱한 용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구치감은 피의자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 독서나 운동을 할 수 있는 구치소와 달리 구치감에서는 포승줄에 묶인 채 조사차례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수감자들 사이에 ‘감옥보다 지독한 곳’으로 통한다. 김모 변호사는 “필요한 진술을 하지 않을 경우 하루 종일 구치감에 대기시키거나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만 한 뒤 돌려보내는 식으로 피의자의 진을 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육중한 철문으로 차단돼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지검의 일부 조사실도 문제다. 정몽헌 회장과 남상국 사장이 조사를 받았고 2002년 서울지검 피의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최근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조사를 받은 한 기업인은 “철문이 철커덩하고 닫히는 순간 ‘여기서 못 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면서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위축된다”고 말했다.

▽일선 검사들의 항변과 대검 입장=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뇌물 수사는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잇따른 사고 때문인지 수사 과정에서 심하게 몰아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온다”며 “이는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와 별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은 수사 적법 절차 준수와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강압 수사는 더욱 발붙이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예전과는 달리 검찰조사를 받고 나서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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