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대책후 첫학기]시리즈 마치며…전문가-학부모 좌담

  • 입력 2004년 3월 1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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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2·17 사교육비 경감대책’ 발표 이후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현상을 10회에 걸쳐 점검했다. 시리즈를 마치면서 교육 전문가 및 당사자들이 모여 정부 발표 이후 교육 현장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어떤 조치들이 취해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나온 지 한 달가량 지났습니다. 실제 현장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조영래=팀을 짜서 과외를 하는 경우가 줄어든 것 같아요. 학원도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수강료를 내립니다. 학부모로서 교육방송(EBS) 수학능력시험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평등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김일형=확실히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강생이 줄어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 학원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조=보충학습 실시 여부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한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강제적이고 획일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교육당국이 잘 살펴야 합니다.

김=우리 학교는 이미 학원 강사에게 일부 수업을 맡기고 있습니다만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이 더 낫다고 평가합니다. 교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면 교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사 고시’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요즘 교사의 자질이 우수합니다.

이수일=교사들에게 학원처럼 수업하라고 하면 아마 더 잘할 겁니다. 하지만 입시 교육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요. 이번 사교육 대책은 학교에 등을 돌린 학생들을 돌아오게 하자는, 일종의 ‘해열제’입니다.

조=이번 대책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사전에 몸을 풀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펀치를 날려 (현장에) 충격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학부모는 “입시 제도가 바뀌어도 우리는 100% 맞춰갈 수 있다”고 자신하더라고요.(웃음) 경제력이 있는 계층은 학교 교육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사교육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지만 대부분 학부모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진곤=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지역별, 학교별 실정에 맞게 운영돼야 합니다. 중소도시 학생들은 학교 말고는 기댈 데가 없지요. 예전에 교육부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금지했을 때 중소도시 학생들만 피해를 봤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학습 분위기가 좋은 학교가 보충수업, 자율학습을 실시하면 효과가 있지만 이른바 ‘짱’이 설치는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억지로 아이들을 붙잡아두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조=이번 대책이 성공하려면 교육부가 학생과 교사의 입장에서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깊게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수준별 수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심여고 등 수준별 수업을 잘 하는 학교를 거점학교로 삼아서 다른 학교 교사들이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열린 교육’이 실패한 것은 학교들은 미처 준비를 못했는데 정부가 억지로 이를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김=자율학습 감독 교사들도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가 열의를 갖고 잘 감독해야 학습 분위기도 좋아지고 참가 학생이 늘어납니다.

이=서울, 특히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교육 문제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사교육 대책은 시골 등 소외계층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가난하더라도 성실히 공부하면 목표한 대학에 무난히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정책의 핵심입니다.

사회=수행평가나 내신 비중 확대 등을 둘러싸고 여러 평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수행평가 비중을 높이면 학생들이 사교육을 더 하게 됩니다.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말고 학생에 따라 피아노 연주, 노래 등 잘하는 분야를 적극 반영해 실기 평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사실입니다. 학원에서 교사별로 평가기준 등에 대해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어 학생들이 학원에서 수행평가에 대비하게 됩니다. 입시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수행평가와 내신을 강화하면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습니다.

일부 학교는 준비물을 안 가져오거나 태도가 불량하면 점수를 깎는 등 수행평가를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을 작은 일에 연연하는 ‘좀생이’로 키우게 됩니다. 아이들을 평가하는 일은 아주 오묘한 과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먼저 학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가의 객관성만 강조하다 보니 결국 선답형이나 단답형 시험으로 가는 거지요. 그래서 학습 과정을 중시하자는 취지로 수행평가가 도입됐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 내신 부풀리기는 교사들이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조=교육부가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대학들이 다양하게 학생들을 뽑을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학들이 그 정도의 능력은 있다고 봅니다.

이=지금도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도록 거의 모든 권한을 넘겨줬습니다. 우리 대학들은 학생이 과거에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를 따지는 과거지향적입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잠재력이나 장래성을 보고 학생을 뽑지요. 국민적 공감대와 신뢰만 형성되면 상대평가를 실시해 내신만으로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텐데….

정=교육부는 모든 권한을 대학에 줬다고 하고 대학들은 하나도 받은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웃음)

김=고교별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평가를 실시해서는 안 됩니다. 1997년 특목고생에 대해 비교내신이 폐지되고 상대평가로 내신을 15등급으로 나눈 종합생활기록부가 도입됐습니다. 이 기록부는 ‘인생을 마감하는 장부’라는 뜻에서 ‘종생부’라고도 불렸습니다. 15등급 학생들이 자퇴하면 14등급 학생들이 15등급으로 내려오고 이들이 자퇴하면 다시 13등급이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이러다가 한 학교에서 200여명이 한꺼번에 자퇴하는 소동까지 벌어졌지요. 일부 대학에서 고교별 수준을 다 파악하고 있는데 대학이 과감하게 학교별로 정확한 잣대로 평가해야 내신 부풀리기가 없어집니다.

정=국가적 차원에서 학업 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고 고교별 결과를 공개해야 합니다. 대학은 내신과 수능 성적만이 아니라 중고교의 교육 과정을 보고 각 대학에 적합한 학생을 뽑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영재 교육, 사회봉사 인력, 국제전문인력 등 각 고교가 다양한 내용의 교육을 실시하고 각 대학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바람직합니다.

사회=교사 평가도 뜨거운 논란거리입니다. 교사 평가는 필요한가요.

조=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경험인데요. 언젠가 학부모회가 열리는 날 교사가 계단에 학생들을 세워놓고 주먹으로 마구 때리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교사 평가를 통해 이런 부적격 교사는 반드시 퇴출시켜야 합니다.

김=요즘 그렇게 강압적인 학교는 거의 없습니다. 교사 평가에 학부모가 참여하면 결국 자녀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신중하게 평가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교사 평가는 교원단체 등과 충분히 협의한 뒤 실시할 생각입니다. 평가가 교사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우수한 교원을 확보하려면 현직 교사도 평가해야 하지만 교사 양성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양성 과정의 한 시간은 연수 기간의 10시간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사 양성 문제는 거의 방치되고 있어요.

조=교사에게도 교수와 같이 안식년 제도를 도입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자기계발을 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정=교사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 사기를 북돋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이번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각 기관이 일치단결해 일관성을 갖고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울러 사교육비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학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도 진행해야 합니다. 과외 안 받고 대학에 갈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학교가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제가 외고 교감이라서 그런지 특목고 대책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외고 출신자는 모두 동일계열 학과로 가라는 것은 무리 아닙니까. 외국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외국어를 잘하는 인재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야 국가경쟁력도 키울 수 있거든요.

이=특목고가 대학 입시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墟逵勺낮?학급을 운영하는 외고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학교 체제를 다양화하려고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었는데 입시 위주 교육으로만 흐르면 안 되지요. 이제 특목고를 설립 취지에 맞도록 교과 과정을 제한하려는 겁니다.

조=주한 외국대사들을 몇 명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서툴게 영어로 말하니까 그쪽에서 한국말로 하자고 먼저 제안합디다. 가슴이 뭉클했어요. 특목고에서도 이처럼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폭넓은 시각을 지닌 인재를 기르는데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참석자 명단▼

○이수일(李修一)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 실장

○정진곤(鄭鎭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김일형(金一衡)

서울 대원외국어고 교감

○조영래(趙營來)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부회장·고교 3년생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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