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신청 오세철 연세대 교수 왜?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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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극악한 형태의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적 주류 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진보논리는 마르크시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 몰락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젊은이들이 없어 대가 끊길 위기에 놓였지요. ‘멸종’ 위기에 처한 한국의 마르크시스트를 길러내는 일이 시급합니다.”

오세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60·사진)가 정통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를 길러낼 ‘사회과학대학원’ 설립을 위해 정년을 5년 남겨두고 최근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인문 사회계열에서 대학교수가 정년을 채우지 않고 퇴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 오 교수는 “더 이상 대학원 설립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측이 19일 오 교수의 퇴직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오 교수는 학기가 끝나는 내년 2월 학교를 떠나게 된다.

오 교수는 사회이론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등 진보적인 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1992년 대선 때는 백기완 민중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이론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오 교수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마르크시스트들이 상지대 성공회대 한신대 등을 중심으로 학계에 진입했지만 뿔뿔이 흩어진 채 제도권에 흡수돼 후학을 길러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2005년 9월 개교 목표인 사회과학대학원은 ‘정부나 자본에 예속되지 않는 대안학교로서 사회 발전을 위한 진보 논리를 만드는 것’이 창설 이념이다. 오 교수는 “프랑스 68혁명의 성과로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도해 설립한 파리 8대학이 모델”이라며 설립 및 운영자금은 국민모금 형태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회과학대학원은 학부과정 없이 대학원만 있는 단설 대학원. 학부과정은 대학원 운영 성과를 보아가며 개설할 계획이다. 교과 과정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틀 안에서 분과 학문을 넘어 주제 중심의 학제간 연구로 구성된다.

대학원 설립에는 오 교수 외에 김진균 전 서울대 사회학과,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의 일부 회원이 참여한다. 내년 3월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4월부터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대중적인 설립 운동을 벌일 계획.

올 한 해 한국사회를 달군 진보 대 보수 논쟁에 대해 오 교수는 “큰 틀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 진영도 진보를 가장한 수구세력일 뿐이며, DJ 정권과 노 정권 모두 신자유주의의 2중대”라고 평가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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