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난 고3교실 ‘파행수업’…6교시 수업 의무화 말뿐

  • 입력 2003년 12월 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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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출석 점검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비디오만 봅니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을 하게 해 주세요.”(서울 K고 3학년 김모군)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인문계 고교 3학년 학생들에게 6교시 수업을 하도록 지침을 내렸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마땅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해 수업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자습, 비디오 감상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어 학생들은 불만을 터뜨리기 일쑤다.


최근 대구 K고 3학년인 한 여학생은 “시간만 낭비하는 6교시 수업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못했다”며 대구교육청에 하루 4000원씩, 한 달에 12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수능시험이 끝난 뒤 매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교육부는 매년 ‘고3생 수업 지침’을 내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게다가 2일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본격적인 입시원서 작성이 시작되면 일선 교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서울 Y고는 3교시까지 교사가 수업을 하고 이후에는 반별로 등산, 대학방문 등 야외활동을 하고 있다.

이 학교 3학년 담임교사는 “학생들이 운전면허,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에 관심을 보여 수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야외 활동을 해도 도망치는 학생이 많아 일일이 단속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광주 D여고 김모 교사는 “오전 10시에 등교하거나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이 많지만 이들을 모두 결석 처리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매일 교양 강좌와 대학 캠퍼스 투어 등을 할 수도 없어 하루하루를 때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교육부의 방침이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 부담만 지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가 논술 구술면접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한다며 학교에 항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교육부의 눈치를 보며 2, 3교시 수업만 한 뒤 학생들을 하교시키는 학교도 적지 않다.

서울 Y고 이모 교감은 “3학년생들을 학교에 붙잡아두면 소란을 피우고 떠드는 바람에 1, 2학년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라며 “2일 수능시험 성적표가 나오고 원서 작성에 들어가면 학생 지도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교육부 지침을 어길 수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수능시험 이후 고교 3학년에 대한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수능시험이 끝나면 학교 교육도 끝났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박인옥 사무처장은 “학생들에게 지역문화 탐방, 자원봉사, 시민사회단체 활동 참여 등의 기회를 제공해 수능시험 이후의 수업도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학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각 학교에 수능시험 이후 체험학습, 교양 교육, 대학 방문 등의 교육과정을 편성해 운영할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수능시험 이후 고교 3학년생의 수업 파행을 막기 위해 해마다 수능시험 일자를 늦추고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목포=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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