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니 사태(?)' 에 대한 연기예술학과의 입장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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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귀여니(본명-이윤세)학생의 본 학과 수시 입학에 따른 많은 학생들의 질타하는 글들을 읽으면서 바로 몇 년전 학과 신설 초기의 일이 떠올랐읍니다.

TV탤런트겸 영화배우 김혜수씨(본 대학 언론정보 대학원 석사)를 본 학과 겸임교수로 초빙하려 하자 이번에 못지 않은 질타의 여론이 들끓었읍니다.

마치 범법자를 교수로 모셔오기로 하기라도 한 양 비난의 목소리가 컸는데 교수의 임용은 대학 당국이 최종 판정할 일이지만 우선은 학과가 정한 나름대로의 기준에 입각하여 임용 추천을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특히 인사에 관하여는 비리와 부정이 개입하지 않은 한 학과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대학의 기본이며 이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고유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각 개인의 견해는 얼마든지 달리 할 수 있으나 여타 전공 분야에서 이를 공론으로 문제 삼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며 학문 영역의 침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김혜수씨의 겸임교수 초빙은 임용의 결격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당국의 눈치보기와 본인 자신의 출강 포기로 한 학기만에 무산되고 말았읍니다.

돌이켜 보면 21세기가 열리던 지난 2001학년도에 본 대학의 예술학부 연기예술학전공이 처음 신설되었을 때 21세기를 실감했었읍니다.

타 대학도 아닌 성균관대학교에 연극, 영화관련 전공이 신설된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었으며 모두가 놀랐읍니다.

본인은 연극 연출가로 30년간 활동해 왔으며 본 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20년간 봉직해 왔는데 600년 전통의 우리 대학에 지난 10여년 간의 끈질긴 학과 신설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마침내 연기예술학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이 학과가 신설 결정되었을 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격했었읍니다.

그 당시에도 학내 여론은 곱지 않았읍니다.

유학의 본산인 600년 전통의 대학에 무용에 이어서 이번에는 왠 ‘딴따라’ 전공마저 신설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었읍니다.

이제 올해에는 학부 신입생의 입학 결정이 문제가 되고 있읍니다.

마땅히 학과 주임교수로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르렀읍니다.

귀여니 학생의 수시 전형의 과정을 설명하겠읍니다.

우선 본 학과의 수시 응시 자격은 타 대학에 비하여 까다롭습니다.

기성 연극무대에서의 경력이 있거나 영화, TV(교육방송을 제외한 공중파 방송)주연 1회 이상 또는 조연 2, 3회 이상과 수상 경력은 전국청소년연극제 본선 우수연기상 수상 이상으로 국한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방송, 연예활동 경력까지만 인정됩니다.

여타의 모든 수상 경력이나 방송 연예 프로그램 출연 및 미인대회, 패션, CF모델 등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귀여니 학생의 본 학과 수시 지원은 학과로서도 뜻밖의 경우였읍니다.

우선 이 학생이 왜 문예창작과나 국문과에 지원하지 않고 우리 학과에 지원했는지부터 의아했읍니다.

인터넷 소설이란 것을 접해본 적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이 학생이 입학해서 무슨 공부를 하고자 하는지부터 살펴 봤읍니다.

그래서 최근까지의 활동 경력을 보니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를 비롯하여 3편을 발표해서 화제가 되었으며 세 편이 모두 출판되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세 편 모두 영화화 계약을 체결하여 그중 두 편은 이미 제작에 들어갔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본인의 입학 동기는 대학에서 인문학의 소양을 쌓은 뒤에 드라마(연극, 영화 및 TV)를 쓰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읍니다.

우리 학과의 명칭은 ‘연기예술학전공’이지만 작년부터 30명 정원 가운데 5명을 연출전공으로 뽑고 있읍니다.

아다시피 요즘의 연출 경향 중의 하나는 작가를 겸업하는 추세임으로 입학후 연출전공으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읍니다.

다음으로 이 학생이 수시 응시 자격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했읍니다.

본인은 수시 전형 위원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여 입학관리팀과 협의했읍니다.

협의 결과 3편의 영화화 계약을 응시 자격의 마지막 항인 방송 연예활동 경력으로 인정할 수 있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읍니다.

그래서 5명 정원의 5배수를 뽑는 1단계를 통과하여 2단계 심층면접 고사를 치르게 되었읍니다.

합격 여부를 판정짓는 이 2단계 최종 면접에서 학생의 자질을 판단하기 위하여 제출한 인터넷 소설 가운데 "그놈은 멋있었다" 1편을 읽고 나서 면접에 임했읍니다.

지금 학내에서 가장 논난이 되고 있는 바로 이 부분, 곧 귀여니의 소설이 과연 소설 문학 작품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하여 본인의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우선 그의 소설이 문학 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느냐는 본 학과의 평가 기준도 아니며 평가할 전문적 자격도 없거니와(본인은 드라마 전공임) 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대다수도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귀여니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학생이 드라마 작가로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였읍니다.

읽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우선 그의 소설은 거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읍니다.

드라마의 기본이 대사(dialogue)라는 것은 다 알것입니다.

그것도 생동하는 살아 있는 언어들입니다.

오히려 이것을 문제 삼아 맞춤법 파괴라고 공격하지만 그렇다면 투박한 사투리로 쓰여진 드라마는 표준어 파괴라는 이유로 배척되어야 할까요? 본인은 결코 귀여니의 소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읍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학생이 드라마 작가로서 소질이 있는가를 판별하는데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질타한 외계어(?) 사용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여기서도 소설로서 작가를 옹호할 뜻은 없읍니다.

보통 소설답지 않게 거의가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 묘사 부분은 없다시피 하며 이것들이 모두 외계어로 대체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은 드라마로 보자면 소위 ‘sub-text'(숨은 의미 혹은 hidden meaning)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곧 다이알로그에 맛을 치고 간을 넣은 것입니다.

작가는 이미 드라마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전통적 희곡처럼 설명적 지문(stage direction)을 넣는 대신에 요즘 애들의 코드에 맞춰서 은어적 부호를 사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 왜 그렇게 선풍적인 화제를 몰고 왔을까(비록 철없는 초중등 학생들에 국한한 현상이라 해도)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리면서 본인이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대목은 그의 소설을 유치하고 상투적인 순정 소설이라고 혹평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대화에서 느껴지는 의도적인 반감상주의(unsentimentalism)적 시각입니다.

순정은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을 뿐이며 겉으로 오가는 대화는 본심과는 달리 살벌하기까지 합니다.

이 같은 본인의 해석이 맞다면 귀여니는 드라마 작가로서 꼭 필요한 기본적 자질, 곧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통찰력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되풀이 하거니와 본인이나 학과는 귀여니의 소설이 소설 문학적 가치를 지녔는지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고 평가할 자격도 없읍니다.

연기예술학과는 소설가를 뽑는 학과도 아니며 순수예술보다는 대중예술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학과이고 더더구나 이미 기성 작가 또는 예술가로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을 학생으로 뽑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잠재적 소질을 가지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4년간의 교육을 통하여 기성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주려 할 뿐입니다.

귀여니가 우리 대학에 입학하여 후일 훌륭한 드라마 작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는 본인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이 본인의 책무라고 느끼며 이미 합격 통지를 받은 귀여니의 장도를 축하해주지는 않더라도 어린 가슴에 못을 박는 것만은 우리 선배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장래를 전혀 예단할 수 없는 방송, 영화 출연 경력 두세편만 가지고도 수시 지원 자격을 얻어 입학하는 우리 학과에 귀여니가 입학했다고 해서 우리 성균관대학교를 욕되게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연기예술학과는 예술학부의 특성상 정시 모집에서도 수능및 내신 성적보다는 불과 3분 이내에 발표하는 실기 성적이 합격 여부를 좌우합니다.

학과의 특성이 여타 전공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바탕위에서 귀여니 문제도 바라보아 주기를 당부합니다.

우리 연기예술학전공 학과는 2001년도에 신설된 학과지만 타 학과와 마찬가지로 우리 대학의 엄연한 공조직입니다.

대학에서 정한 절차와 규정에 입각하여 입시를 치르고 합격한 신입생의 입학을 취소하라고까지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학과의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 본인 개인은 물론이려니와 대학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의 표현으로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심심한 유감과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물론 ‘귀여니 사태’(?)에 대한 많은 학생들의 걱정은 애교심의 발로라고 믿습니다.

그 애교심을 이번 사태만이 아니라 60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 1998년부터 우리 학과가 주관하여 매년 봄학기에 우리 대학 설립자이자 유학자이신 심산 김창숙 선생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공연해 오고 있는 "나는 누구냐?" 공연 때에도 발휘하시어 입학때 나눠받은 "김창숙 문존" 을 아직도 읽지 못한 대신으로라도 꼭 관람해 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물론 관람은 무료입니다.

그리고 이미 관람한 모든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공연을 통해 재미와 더불어 성대생으로서의 자부심을 확인했다고 했읍니다.

귀여니의 작품을 비난하고 매도하고 폄하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내년 봄 "나는 누구냐?" 공연을 꼭 관람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끝으로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성균관대학교가 권위와 위엄에 짓눌린 여늬 대학과 달리 언제나 열려 있는 대학으로 남을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정진수(연기예술학전공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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