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밀집지역 단속 첫날…텅빈 거리서 ‘빈손 검문’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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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 팔 좀 놔 주세요.”

“여권과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일단 보호소에 가서 신분을 확인해야 합니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합동단속이 시작된 17일 오전 11시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국 동포 거주지역에서 붙잡혀 전경버스로 연행된 김모씨(60·여)가 합동단속반과 실랑이를 벌이며 울부짖었다.

김씨는 한국인과 결혼한 딸이 도망가 버린 데 앙심을 품은 사위의 신고로 검거됐다.

김씨는 “비행기삯조차 없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딸마저 도망가 버렸으니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울먹였다.

비슷한 시간 인근의 한 중국 음식점. 단속반이 들이닥치자 조선족 종업원 최모씨(39)가 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하다”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신고를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저는 그냥 직장을 옮겼을 뿐인걸요. 남들한테 피해도 안 줬는데 왜 쫓겨가야 하나요.”

그는 일하는 중국 음식점을 옮기면서 신고를 하지 않아 ‘근무처 무단변경’으로 단속에 걸렸다. 근무처 무단변경도 강제출국 대상. 적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신고 없이 일터를 옮겼다는 이유로 단속에 적발됐다.

전국적으로 법무부 직원과 경찰 등 50개반 400명이 투입된 이날 단속은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여론을 고려해 체류자의 숙소나 공장은 피하는 대신 식당과 유흥업소 및 노상 검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12만명에 이르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거리와 식당 등에서 자취를 감춘 터여서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출입국관리국 서울사무소 2반은 이날 정오부터 구로구 오류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 모텔과 식당을 중심으로 단속을 벌였으나 미신고 외국인을 거의 찾지 못했다. 경기 고양, 파주, 의정부시 등 10개 시군에서는 4000∼5000여명의 불법체류 외국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유흥업소나 식당을 중심으로 단속에 나섰으나 오후까지 별 실적을 내지 못했다.

평소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는 썰렁한 모습으로 주택 담마다 ‘월세, 전세 구합니다’라는 전단지가 나붙었다.

우려했던 대로 가짜 외국인등록증도 등장했다. 안산의 한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 밀코와우 후환토로씨(22) 등 2명은 이날 가짜 외국인등록증을 단속반에 제출했다가 적발됐다.

그는 “사장님이 가짜 등록증을 주며 ‘이걸 갖고 다니면 무사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줬다”고 말했다.

실제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진다 해도 수용시설의 부족이 문제다. 현재 마련된 전국 16곳의 수용시설은 1300여명의 외국인만 겨우 수용할 수 있다. 법무부도 이를 고려해 앞으로 열흘 동안 1300명 정도의 불법체류 외국인을 적발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출입국관리국 서울사무소 문화춘 조사3과장은 “수용된 불법체류 외국인을 되도록 빨리 출국시키고 이후 단속에 걸린 외국인을 여유가 있는 수용소에 수용하는 방법으로 시설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 합법화 접수 기간인 9월부터 이달 15일까지 2만3441명의 단속 대상 외국인들이 자진 출국했으며 현재 불법체류자는 10만여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50개 전담 단속반을 동원해 17일 오후 10시 현재 전국에서 70여명의 불법체류자를 적발했다. 서울및 경기 남부지역에서만 30여명이 적발됐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안산=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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