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불려줄게…” 20대부부 16억 사기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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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 제가 한 일입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력반에서 임신 6개월인 백모씨(28)가 남편을 두둔하자 남편 장모씨(29)는 “제가 못 챙겨줘서 이렇게 됐습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들 부부의 혐의는 절도와 사기, 사문서 위조 등. 결혼한 2001년 5월부터 올해 8월말까지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7차례에 걸쳐 피해자들로부터 모두 16억3000만원을 받아 빼돌리고 5억원짜리 자기앞수표 1장을 훔친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백씨는 20세에 수예점을 열었으나 실패하고 빚을 지기 시작했다. 이후 빚을 갚으려 카드돌려막기를 시작했고 결국에는 술집에도 나가게 됐다. 술집에서 손님과 종업원 사이로 만난 장씨와 백씨는 “사채에 돈을 투자하면 높은 이자를 주겠다”며 다른 사람의 돈을 가로채기 시작했다.

부부는 자신들을 젊은 부동산 갑부라고 속이며 친인척으로부터 소개받은 사람들에게서 수억원대의 거액을 본격적으로 가로채기 시작했다. 아예 올해 5월부터는 시가 10억원 상당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호화 주상복합아파트를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500만원을 내고 빌려 친인척으로부터 소개받은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경찰은 부인 백씨가 미모와 언변이 뛰어나 피해자들이 쉽게 속아 넘어갔다고 전했다.

점점 대담해진 백씨는 올해 8월 말 자신의 집을 찾은 신모씨(41·여)의 차 조수석에 앉아 신씨가 후진을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사이 신씨의 가방에서 5억원권 수표가 든 지갑을 빼내기도 했다.

그러나 8월 이후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이들 부부는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가며 강원 강릉시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일대의 여관을 전전해야 했고, 결국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2평반짜리 고시원에서 숨어 지내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사기행각을 주도한 부인 백씨를 20일 구속하고 운전과 은행 심부름을 주로 맡은 남편 장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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