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타는 韓電… "변전소 들어서면 집값 떨어져" 주민 반발

  • 입력 2003년 10월 1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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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의 변전소와 송전선로 시설 건설을 둘러싸고 전국 곳곳에서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해 이를 저지하려는 주민들과 강행을 고수하는 한전 간에 심한 마찰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공사가 지연돼 일부 지역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제한송전이 검토되는 등 전력 공급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내 집 앞은 안돼”=내년 5월 입주 예정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파크뷰 아파트(1829가구) 입주 예정자들은 아파트에서 75m가량 떨어진 곳에 변전소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고 올해 3월 서둘러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했다.

이들은 이후 세 차례 성남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청와대와 행정자치부 등에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당초 분당구 금곡동에 변전소 부지를 마련했다가 성남시의 반대로 파크뷰 아파트 인근으로 부지를 옮긴 한전은 성남시가 이 부지에 대해서도 세 차례나 건축허가를 반려하자 이를 취소해 달라는 심사청구를 8월 감사원에 냈다.

파크뷰 입주자대표회의 박모 상임위원은 “집값 하락 등 재산상 손실은 감수하더라도 전자파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변전소 설립을 용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기 김포시 감정동에서는 김포변전소 건설 공사를 놓고 주민과 한전이 2년 가까이 마찰을 빚다 공사를 가로막은 주민대표 3명이 7월 구속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한때 자녀들의 등교거부 시위까지 벌이는 등 강력히 맞섰고 한전은 현재 공사를 중단한 채 주민 대표와 부지 이전 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이처럼 주민들의 집단민원 발생으로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는 전력공급시설은 전국적으로 변전소 15곳과 송전선로 일부 구간 10곳 등 모두 25곳에 이른다.

▽제한송전 불가피=공사 차질은 곧바로 전력 공급의 과부하로 이어질 전망이다.

분당지역의 올해 시간당 최대 수요전력은 414MW로, 이는 최대 공급능력의 85% 수준이다. 그러나 정자동의 변전소가 들어서지 못하면 전력 수요가 내년엔 99%에 이르고 2005년엔 107%로 수요가 공급을 앞서게 된다.

경기 용인지역은 내년 시간당 예상 최대 수요전력이 152MW로 내년까지 남사변전소가 들어서지 못할 경우 공급능력(140MW)을 초과하게 된다.

연산변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부산지역은 이미 올해 시간당 최대 수요전력(420MW)이 공급능력(378MW)을 넘어섰다.

한전 관계자는 “송·변전시설의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결과가 여러 차례 나왔지만 주민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다”며 “변전소가 제때 들어서지 못하면 당장 내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제한송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기대책 세워야=송·변전시설 건설과 관련된 민원은 갈수록 뚜렷하게 ‘내 집 앞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양상을 띠고 있다.

올해 9월까지 제기된 53건의 민원 가운데 피해보상 요구는 단 1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보상금도 필요 없으니 무조건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전기연구원 윤재영(尹在暎)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에너지 절약정책을 통해 수요를 관리하고 중장기적으로 수요지 근방에 소규모 발전소를 지어 전력을 공급하는 분산전원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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