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6명 유죄선고]“대출-송금절차 위법…처벌마땅”

  • 입력 2003년 9월 2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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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특검 수사에 이어 재판과정에서도 대북 송금의 통치행위 여부와 남북정상회담 대가성 등을 놓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던 대북 송금 사건 1심 재판이 26일 관련자 6명에게 유죄가 선고된 채 일단락됐다.

▽대북 송금의 ‘통치행위’ 여부=올 1월 문희상(文喜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 문제에 개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만일 통치행위 차원에서 한 일이었다면 국익 등을 고려해 덮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른바 ‘통치행위론’ 논쟁이 불거졌다.

통치행위란 국가기관의 행위 중 국가나 민족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뜻하며, ‘통치행위론’은 법원이 통치행위의 효력에 대해 스스로 사법적 판단을 자제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통치행위는 물론 그와 연관된 행위에서 형사법 위반의 혐의가 있을 경우에도 사법적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대북 송금과 불법대출이 정상회담과 직간접적 관련성을 가질 뿐 그 자체가 통치행위는 아니고 형사법을 어긴 것이므로 당연히 처벌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남북정상회담을 통치행위로 인정하면서도 이번 재판이 대북 송금의 위법성 여부를 가리자는 것이어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판단은 논외로 한다고 덧붙였다.

▽정상회담의 대가성 판단=재판부는 북한에 송금된 4억5000만달러가 남북정상회담의 대가인지 여부와 관련해 “대가성 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려운 데다 판단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대가성 유무와 관계없이 대북 송금 및 불법대출은 실정법 위반 행위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에 미친 영향, 송금이 없었을 경우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에 대해 의견이 대립하고 있고, ‘대가’라는 용어가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대가성 여부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북 송금은 남북정상회담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으며 불법대출도 정상회담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일정부분 관련성을 갖는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북한은 외국인가=재판과정에서 북한이 외국환거래법상 ‘외국’에 해당하는지도 논란이 됐다. 재판부는 헌법의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에 비춰 북한을 ‘외국’으로, 북한의 주민을 ‘비거주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북 송금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승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데 위법성이 있으므로 북한과 북한주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논외로 했다.

더구나 외국환거래법상 외국환관리지침에는 자본거래 상대방이 북한일 경우 투자방법 등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어 이 규정을 위반한 대북 송금은 당연히 유죄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전망=이 사건 관련자들은 대북 송금이 통치행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이를 둘러싼 공방은 상급심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날 선고 직후 재판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항소의 뜻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재판은 대북 송금 사건으로 기소된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한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 전 장관은 현대로부터 비자금 150억원을 수수한 혐의가 추가 기소돼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재판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대북송금 의혹사건 관련자 선고 현황
피고직책혐의구형선고비고
임동원국가정보원장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2년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불구속 기소
이기호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 및 직권남용3년징역 3년 집행유예 4년구속 기소
이근영산업은행 총재특경가법상 배임3년징역 3년 집행유예 4년구속 기소
박상배산업은행 부총재특경가법상 배임3년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불구속 기소
김윤규현대아산 사장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2년징역 1년 집행유예 2년불구속 기소
최규백국정원 기조실장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1년선고유예불구속 기소
박지원문화관광부 장관직권남용 및 구 외국환거래법 등5년-추가기소로 선고 연기
정몽헌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사망으로 공소기각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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