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쟁점]종로 피맛골에 20층건물 신설

  • 입력 2003년 9월 17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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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종로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지는 긴 골목길, 이름 하여 ‘피맛골’이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종로 대로를 휩쓸던 양반들의 말 등을 피해 평민들이 다닌 길이라는 의미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민들의 애환과 정취가 서린 피맛골에 최근 이름 하나가 새로 붙었다. 바로 ‘청진6지구 재개발 계획지역’.

지난달 르메이에르건설㈜이 청진동 166 일대에 20층짜리 대형 건물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피맛골이 존폐 여부를 놓고 일대 분란에 휩싸였다.

16일 밤 돌아본 피맛골은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등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골목의 벽마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상인들이 써 붙인 벽보들이 분란의 현장임을 실감케 했다.

▽“손때 묻은 그대로 지켜나가자”=피맛골 인근 지역은 교보빌딩과 종로타워 등 신형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지역에 ‘섬’처럼 남아 있는 이색지대이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양측으로 낙지, 해장국, 생선구이, 빈대떡 등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과 술집, 찻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에서 20년째 ‘금성식당’을 운영해 온 이상인씨는 “재개발 소문 때문인지 몰라도 손님이 크게 줄었다”면서 “크고 반듯해야만 좋은 건 아니지 않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피맛골 상인 대책위원회가 결성된 데 이어 피맛골에 청년기의 추억을 남겨둔 문화예술인들도 피맛골 지키기에 가세하고 나섰다. 소설가 박인식, 개그맨 전유성, 국악인 변규백 등 30여명의 문화예술인이 피맛골 지키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책위는 “문제는 종로의 오랜 골목을 개발의 잣대로만 보는 것”이라며 “피맛골은 관이 나서서 지켜줘야 할 서민들의 거리”라고 주장했다.

▽“피맛골은 더욱 새롭게 태어난다”=사업 시행사인 르메이에르건설㈜은 올해 말 분양을 끝내고 내년 1월이면 착공에 들어가 2006년 12월에 완공할 예정.

여기에 르메이에르와 계약을 한 건축주 김모씨 등 2명이 낸 건축심의가 9월 3일 서울시 건축위원회를 통과해 재개발은 더욱 급물살을 타게 됐다.

르메이에르에 따르면 피맛골 2622평 부지에는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로 △스포츠클럽(연면적 3200평) △주점과 식당가(지하 2층∼지상 5층) △오피스텔(11∼48평형 600호) △주민공원 등을 갖춘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 들어설 예정이다.

르메이에르측은 “건물 1층을 관통하는 폭 4∼5m의 길을 만들어 옛 정취를 살릴 것”이라면서 “더 좋은 명소로 다시 태어나게 하자는 것이지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며 주민들의 이해를 구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데 특별한 법적 문제는 없다”면서 “세부적인 진행 과정은 양측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피맛골 분쟁에 거리를 두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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