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영어조기교육 열풍, 몇살부터 시켜야 하나

  • 입력 2003년 9월 3일 18시 17분


유아들에게 무리하게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킬 경우 심리적 측면이나 발달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 사설영어학원에서 어린이들이 외국인 강사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유아들에게 무리하게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킬 경우 심리적 측면이나 발달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 사설영어학원에서 어린이들이 외국인 강사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국내 영어 교육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영어학원과 영어교재,해외 연수 비용 등을 합치면 한해 4조∼5조원 규모가 될 것 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어교육에 돈을 쓰는 사람도 매년 12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교육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전국의 영어학원 수는 3000여개. 그러나 실제로는 1만개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영어학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의 일부 학원가에는 어린이 영어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과잉 경쟁으로 경쟁력이 없는 어학원들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면서 문을 닫는 사례도 많아 해마다 수백개의 어학원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몇 년 만에 문을 닫기도 한다.》

언제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교육인적자원부는 1997년 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 시기를 중학교 1학년에서 초등 3학년으로 낮췄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어를 배우고 있다. 2001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서도 전국 1116개 사립 유치원 가운데 64.3%가 영어를 특기활동으로 가르칠 정도로 조기 영어교육 열기는 높다.

어린이영어학원 사이버영어학원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원어민 강사의 문제점을 추적한 EBS TV ‘PD리포트’의 한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많은 학부모들이 영어는 되도록 일찍 배워야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혀가 한국식 발음에 맞춰 굳어지기 전에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며 우리말도 배우지 못한 자녀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도 있다. 이를 위해 학부모들이 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영어는 과연 일찍 배울수록 좋은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일찍 배울수록 좋다?=동덕여대 우남희 교수팀은 영어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만 7세 아동 13명과 만 4세 아동 10명을 선정해 영어학습 효과의 연령별 차이를 검사했다.

한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모두 8차례에 걸쳐 30∼40분씩 단기간의 영어 교육을 실시한 뒤 이들의 영어 능력을 검사한 결과 총점 92점에서 7세 아동집단은 평균 60.6점, 4세 아동 집단은 평균 29.9점을 받아 7세 아동들의 성적이 훨씬 높았다.

수업시간에 7세 아동들은 영어라는 새로운 학습내용에 흥미를 느끼고 강사의 설명에 주의를 기울인 반면 4세 아동들은 금세 싫증을 내고 집중력을 잃어 강의를 따라잡지 못했다.

4세 아동들은 ‘그랬쩌’, ‘맛있떠’ 등 아기의 발성 습관이 남아 있어 강사의 영어 발음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다. 그러나 7세 아이들은 발음을 비교적 정확히 따라했고 교사의 교정지시에 따라 고치려고 노력했다.

국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강사들도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영어를 배우는 데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 교수팀이 원어민 강사 63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모국어도 잘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외국어인 영어를 가르치는 데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3∼6세 아동의 경우 집중력이 부족해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부모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학습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너무 어리면 역효과=만 3세까지는 전체 뇌의 기본 골격과 회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감을 고르게 자극해야 하는데 영어 테이프나 비디오 등을 통해 시각이나 청각 등 한 가지만 집중 자극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서울대 의대 서유현 교수는 “만 3∼6세는 종합적 사고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다양한 경험과 예절, 도덕교육을 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만 6∼12세에 발달하는 측두엽의 기능인 언어 즉, 영어교육을 과도하게 시키면 미처 성숙하지 못한 언어중추를 지치게 해 장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충고했다.

결론적으로 영어 교육은 측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인 6∼12세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것.

▽한국인 강사가 나을 수도 있다=‘한국인 영어 강사보다는 원어민 강사에게 배우는 것이 낫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타당성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 교수팀이 유아 영어학원 27곳을 대상으로 설문 또는 면접 조사한 결과 만 5∼12세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강사 79명 중 교육경력이 있는 사람은 4.8%에 불과했다. 또 대학을 갓 졸업한 강사가 50.8%였고 전체 강사의 69.8%는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교육 경험이 있다는 나머지 강사 30.2%도 베이비시터(아이 돌보는 사람) 등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외국인 강사들의 한국체류기간은 평균 1년2개월이었고 한국에서의 영어강사 강의경력은 평균 11.9개월이었다. 유아 영어교육과 관련된 영어교육 영문학 교육학 등을 전공한 강사는 전체의 29.2%에 불과했다.

모르는 것을 한국말로 물어볼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원어민 강사보다 한국인 강사를 선호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우 교수는 “인지적 정서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은 유아들에게 자연적으로 조성된 상황이 아닌 학습 환경에서 조기 영어교육은 심리적 발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무분별한 영유아 영어교육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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