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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17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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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검찰의 방침은 일단 원론적 언급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권씨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단서도 확보하지 않은 채 철저한 수사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이런 방침을 밝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의 필요성 때문에 이 같은 방침을 굳혔다는 시각도 있다.
권씨가 200억원을 현대에서 받았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200억원이 권씨의 수중에서 어디로 흘러갔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없으면 권씨의 혐의는 법원에서 무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권씨가 무죄를 선고받을 경우 검찰은 ‘부실 수사’ 또는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일반인의 법 감정과 실정법 적용간의 괴리 때문에 검찰이 ‘권씨 비자금 수혜자’에 대한 조사 방침을 정했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지난주까지 “2000년 총선 당시 권씨로부터 돈을 전달받은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 3년이 지나 더 이상 진행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이후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공소시효를 이유로 현대비자금을 권씨와 함께 나눠가졌다는 정치인들에 대한 조사 자체를 포기할 경우 검찰이 또 다른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는 여론이 일었다.
사실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는 일반 범죄에 비해 지나치게 짧아 ‘정치자금은 3년만 들키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비난과 함께 다른 범죄와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검찰이 처벌이 아닌 진상 규명 차원에서 ‘권씨 비자금 수혜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는 관측이다.
비자금 수혜자에 대한 조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권씨에게서 직접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밝히는 수사. 이 경우 권씨가 건넨 돈이 현대비자금인줄 알고 받았고 현대를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한 정치인들이 집중 조사 대상으로 꼽힌다.
둘째, 현대와는 무관하게 권씨가 건넨 현대비자금을 전달받은 정치인들에 대한 조사다. 검찰은 일단 이 범주에 포함된 정치인들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검찰은 보강조사를 통해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직접 조사 또는 서면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떨고 있는 '권노갑 장학생'▼
검찰이 17일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의 현대비자금 ‘수혜자’들을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한다고 나서자 민주당이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는 관련 정치인 명단이 적힌 ‘리스트’까지 나돌고 있으며 11명이 나오는 것과 16명이 거명되는 것 등 3종이 돌고 있다는 것.
‘권노갑 장학생’으로 거론되는 의원들은 “받지도 않았는데 무슨 대가성이냐”며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혹시 (권씨가) 검찰에서 입을 연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A의원은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가혹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이 별 근거 없이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며 “이러니 검찰총장을 국회에 출석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검찰을 맹비난했다.
B의원은 “권씨가 측근들에게 ‘아무 걱정 말라’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데 검찰이 한 술 더 떠 (권씨에게서) 돈 받은 사람을 조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쾌해했다.
C의원 보좌관은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면서도 “검찰이 갑자기 권씨 돈을 받은 사람들을 조사한다고 입장을 180도 바꾸었다면 무슨 근거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권씨의 한 측근은 이날 기자와 만나 “권씨가 구속되기 직전 측근들에게 ‘걱정하지 말라. 이번 건은 (내가 7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진승현 사건과 똑같은 양상이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이 측근은 또 “(권씨가) 당뇨가 심해 얼굴이 부었고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나쁘다”면서도 “건강 문제를 호소하면 혐의를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속으로만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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