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인선 왜 마찰빚나]다수법관 "사법부 독립 훼손말아야"

  • 입력 2003년 8월 15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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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갈등이 일부 판사들의 집단행동 등으로 표면화하면서 대법관 제청 파문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부 소장판사들은 대법관 제청 재고 의견을 담은 연판장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하는 등 반발하고 있지만 다수의 법관은 침묵을 지키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반발을 주도했던 소장판사들 중 일부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데 대한 부담감으로 한발 물러서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앞으로의 상황 변화가 주목된다.

현직 대법관 교체시기
임기이름사시기수
2003.9서성사시 1회
2004.8조무제사시 4회
2005.2변재승사시 1회
2005.9최종영(현 대법원장)고시 13회
2005.10이용우
윤재식
유지담

사시 2회
사시 4회
사시 5회
2006.7배기원
이규홍
이강국
강신욱
손지열
박재윤
사시 5회
사시 8회
사시 8회
사시 9회
사시 9회
사시 9회
2009.2고현철사시 10회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 교체.

대법관의 위상과 역할 등에 대한 점검을 통해 이번 파문의 근원적인 원인과 해법 등을 찾아본다.

▽대법관은 어떤 자리인가=대법관은 ‘판사의 꽃’으로 통한다. 판사로 임관한 모든 법조인은 법원을 떠나는 순간까지 누구나 대법관의 꿈을 가슴에 품고 판사직을 수행한다.

행정 부처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대법관은 통상 판사로 임관한 지 30년이 지나야 비로소 제청된다. 그만큼 대법관에 임명되면 능력과 자질, 경륜 등 모든 면에서 전체 법관의 명실상부한 대표로 인정받는 것이다.

현재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4명. 법원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재판에 관여하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이다. 임기는 6년으로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연임할 수 있지만 통상 본인들이 고사하는 경우가 많아 연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법관의 주된 임무는 연간 2만여건에 달하는 상고심 사건 재판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 3심제인 사법제도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은 법률과 함께 중요한 법적 기준이 된다. 1, 2심 등 하급심 재판에서 대법원의 판례가 판결을 내리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임명된 대법관은 사법시험 기수로 1회부터 10회까지 분포돼 있으며 다음달 11일 임기가 만료되는 서성(徐晟) 대법관은 사시 1회 출신이다. 대법관 14명 중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임기 안에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이 13명에 이른다.

▽이번 파문의 근인(近因)과 원인(遠因)=파문 확산의 직접적인 계기는 12일 열린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파행 운영된 것. 이 위원회는 사법부가 대법관 인사의 공정성을 담보한다며 처음 실시한 제도이다. 자문위원으로 참석했던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과 박재승(朴在承)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제청 방식과 후보자 선정에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며 회의장에서 퇴장하고 위원직을 사퇴했다.

이를 계기로 법원 인사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박시환(朴時煥)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13일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소장판사 144명이 연공서열에 따른 대법관 제청을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14일 대법원장에게 전달하면서 파문이 확대됐다.

이번 파문은 겉으로는 대법관 인선 방식 및 후보자 등을 둘러싸고 소장판사들과 법원 수뇌부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법원 내 보수와 진보세력이 대법관 인선 문제를 계기로 충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변화를 주장하는 소장판사들은 “소수자 보호, 인권 등을 옹호하는 외부 인사가 대법관으로 추천돼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피라미드식의 현행 법관 승진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법관은 “사법부가 변화해야 하는 것은 시대의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시민단체 등에서 검증되지도 않은 인사들을 대법관으로 추천하라는 것은 법원의 안정과 사법부 독립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또 “서열이 급격히 변하거나 외부 인사를 앉혀야만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일부의 분위기가 문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해법에 대한 의견=이번 갈등은 이념과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은 만큼 문제를 푸는 방법도 어느 한 쪽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수 법조인의 생각이다.

일단 변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의 권한 강화 △연공서열식의 현행 법관 승진인사의 대대적인 개혁 △현행 법관선발 제도의 개선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현행 대법관 제청 방식의 골격을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법관과 전문가도 상당수에 달한다.

서울대 조국(曺國) 교수는 “모든 사회 분쟁의 종착역이 대법원인데 서열 위주로 인사를 하면 결국 법원의 논리를 대변하는 법관이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울러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에서 탈락하면 법복을 벗을 수밖에 없는 현행 법관 인사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상현(黃相顯)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채 전체 법관의 10%도 안 되는 인원의 의견이 마치 전체 법관의 뜻처럼 보여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대법원 개혁의 방향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특정 인사를 거론하며 이런 사람을 대법관으로 제청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사법권에 대한 압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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