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모성' 경찰수사 뺨쳤다

  • 입력 2003년 5월 19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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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한 초등학생(10)의 어머니가 범인을 잡기 위해 한 달 이상 서울과 경기 일대를 돌며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기 모 지역에 사는 김모씨(47·여)는 3월 19일 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실종됐던 초등학생 딸이 다음날 아침 13시간 만에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오자 깜짝 놀랐다.

김씨는 딸로부터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차에 강제로 태워 10분 거리에 있는 S빌라로 끌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

딸은 겁에 질려 덜덜 떨었고 아랫도리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사태를 직감한 김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 산부인과로 딸을 데려갔다.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누르고 수술까지 받게 했다.

경찰은 피해 학생의 진술을 바탕으로 거리와 시간 등을 측정해 경기 부천시 S빌라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 빌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사진을 모두 피해 학생에게 보여줬으나 범인은 없었다. 이후 경찰은 부천과 주변지역의 S빌라들을 찾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에 김씨는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하던 일마저 그만두고 딸이 기억하는 S빌라와 S상사 간판, B마트 등을 찾기 위해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며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러길 한달이 조금 넘은 4월 26일, 부천시에서 딸이 말한 것과 똑같은 지형과 S빌라를 찾아내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이 빌라를 비롯해 실제 범인이 사는 옆 빌라(S빌라가 아님) 주민 등 1500여명의 주민등록 사진을 대조하는 한편 전과기록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성폭행 전과 2범인 신모씨(47)를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 받은 뒤 지난달 29일 구속했다.

경찰은 “부천시에 S빌라가 여러 곳이어서 미처 다 확인하지 못했고 결정적 단서를 잡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 가족은 최근 딸의 간청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부천=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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