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담당형사의 씁쓸한 '살인의 추억'

  • 입력 2003년 5월 12일 14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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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건을 뭣 때문에 다시 헤집으려는지 모르겠다."

1988년 경기 화성시 태안읍 파출소장으로 부임한 뒤 2000년 화성경찰서 수사 2계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12년동안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일선에서 활동했던 남상국(南相國·49)경위(현 화성경찰서 수사 2계장)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최근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인해 화성 사건이 다시 세간의 주목받는 것에 대해 "영화는 원래 흥미 위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면서도 "여러 사람이 연관된 무거운 사건이 가볍게 다뤄지는 같다"고 말했다.

1986년 10월 태안읍의 한 농수로에서 박모씨(여·25)가 양손이 묶인 채 목 졸려 숨진 시체로 발견된 후 5년동안 10명의 여성이 비슷한 수법으로 희생됐다. 연인원 180만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됐지만 결국 연쇄살인범은 잡히지 않았다.

남 경위는 "당시 수사본부에는 각지에서 온 130여명의 형사들이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꼬박 사건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한 형사는 당시만 해도 성능이 좋지 않았던 적외선 카메라를 하도 들여다보는 바람에 시력을 버리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부인과의 불화로 가정파탄에 이른 형사들도 있었다.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수사에 술 한 잔 맘놓고 마실 수 없는 날들이 몇 년간 지속됐다.

남 경위는 "다들 범인을 잡기 위해 필사적이었다"며 "매달 1일과 15일에 사건 현장에 가서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며 수사의지를 다지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의욕이 앞서다보니 무리수가 따르기도 했다. 여러 용의자들이 경찰의 강압수사로 인해 자백했다 번복하거나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범인으로 오인됐던 한 통닭집 주인은 무혐의로 풀려났고 소송에서도 이겼지만 결국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자살했다. 영화 속 마지막 범인의 모델이 된 한 청년에 대해 남 경위는 "단순 성추행범이었다"며 "몇 대 맞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말할 정도의 유약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여덟 번째 살인사건을 수사할 때는 단서가 됐던 범인의 음모와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기 위해 800여명의 음모를 강제로 뽑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범인은 누굴까. 남 경위는 "10건 모두를 연쇄 살인사건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 중 "4건 정도만 연쇄 살인사건이고 나머지는 다른 범인에 의해 벌어진 모방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범인이 아홉 번째 연쇄살인사건에서 남긴 유일한 유류품인 백발 3올과 연쇄 살인범은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범인이 B형 혈액형이라는 점과 그가 여자 어린이를 안고 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 등으로 미뤄 93년 경기 수원시의 한 빈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백발노인 김모씨(67)가 진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그러나 당시의 수사기술로는 김 노인의 시신과 범인의 DNA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수사 방향이 '20대 중반의 방위병 출신'에 맞춰져 나이 많은 인물을 배제했던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17년 수사인생의 3분의 2를 바친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남 경위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10여년 전 용의자를 쫓던 기억을 털어놓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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