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30년간 792㎞분량 쓴 서예가 원양희씨

  • 입력 2003년 3월 19일 2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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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서예가가 30년 동안 민족통일을 염원하며 ‘붓글씨 국토종단’을 시도하고 있다.

충남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 원양희(元亮喜·65)씨는 1973년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지와 신문지에 붓글씨를 써오고 있다. 내용은 민족통일을 기원하는 문구외에도 한시(漢詩)와 고전. 서체도 전서와 초서를 넘나든다.

그동안 하루평균 70장씩 써 모은 17만여장의 한지와 신문지는 20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한지와 신문지의 길이가 80㎝임을 감안하면 1980리(792㎞)로 부산을 출발한 뒤 평양을 거쳐 현재 평북 정주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방문사절’이라는 안내문을 대문에 내걸고 약간의 농사를 짓는 일 외에는 이웃과의 교류도 삼가며 하루 평균 7시간씩 작업해오고 있다.

가끔 더딘 ‘발걸음’을 탓하며 ‘書道 三千里 筆步去 晝夜長天三十年(붓글씨로 걸어서 3000리를 가니 밤낮으로 가도 30년이 넘게 걸리는 구나)’라는 탄식조의 글도 써보지만 종착지인 신의주는 340리(136㎞)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그는 훈장이었던 아버지 영향 덕분인지 어려서 ‘명필의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 때문에 생계를 매달려야 할 처지에 놓여 서예를 접었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생활이 안정돼 다시 붓을 잡았다. 그는 당시 큰 염원을 세우고 정성을 쏟으면 이뤄진다는 생각에 민족통일을 위한 붓글씨 국토종단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글씨를 쓰는 사이 실력이 일취월장해 국전 등에 출품하거나 작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보라는 권유도 적지않았다. 그는 “덜 익은 과일을 따는 것 같다”며 한사코 사양해 왔다.

원씨는 “신의주에 도착해 국토종단이 끝나는 날 북한지역의 서예가들과 ‘남북 합동 서예전’을 열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산=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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