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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27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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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은 5일부터 서울시내 초중고 교사 288명을 대상으로 영어교사의 전문성과 수업지도 능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초중등 영어교사 합숙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육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필 지구 교육청 산하 언어교육평가원에서 이민자나 어학연수생의 영어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 강사 21명이 가르치고 있다.
수년 전부터 국내 학교의 영어 수업이 말하기와 듣기 위주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 학교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영어로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능력을 갖춘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갑자기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려니 영어 구사 능력이 부족한 교사들의 고충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학생들 역시 별다른 준비 없이 갑자기 바뀐 수업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같은 현실에서 2001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이 벌이고 있는 영어 교육 활성화 계획은 효율성과 경제적 측면에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인종(劉仁鍾) 서울시교육감은 “초중고를 졸업하면 어디서나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며 “앞으로 4년 동안 영어교육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연수도 효과적=4주 동안 진행되는 교사 영어 합숙 연수 비용은 4억4000만원. 교사 1인당 4주간 155만원이 드는데 전액 시교육청이 부담한다.
이 계획을 입안한 서울 도곡중 유영국(柳永國) 교장은 “같은 기간에 교사를 해외에서 연수시키려면 항공료를 포함해 1인당 500만원 이상이 들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외국과 똑같은 환경으로 연수가 진행되지만 아무래도 국내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덜 위축되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
서울 개웅초등학교 김유상교사(36)는 “캐나다인 강사들에게 한국 음식과 문화를 가르쳐 주기도 하며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고 있다”며 만족해했다.
이와는 별도로 충남 보령의 서울시교육청 대천임해수련분원에서는 뉴질랜드 원어민 교사 12명과 한국인 영어교사 40명이 4주 짜리 영어캠프에 참가한 서울시내 중학생 200명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1인당 60만원이어서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며 교육내용도 뒤떨어지는 것이 없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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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선발 때 영어능력 중시=서울시교육청은 영어 의사 소통 능력을 갖춘 우수 교사를 확보하기 위해 교사 임용제도도 크게 바꿨다.
초등교사를 임용할 때 2차 시험 중 영어 듣기평가를 영어 인터뷰로 대체했고 중등 영어교사 임용시험에서도 1차 필기시험 중 영어로 답하는 문제를 80% 가량 출제하고 있다. 또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수업 능력에 20점을 배점했다.
교사 채용시 부여하는 영어 능력 가산점 기준도 높였다. 지난해 9월 신규 임용부터 기존 토플(PBT)은 600점 이상, 컴퓨터 채점 방식의 새로운 토플(CBT)은 250점 이상이면 가산점을 준다.
천안 보령=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서울 교육청 ‘영어전용 타운’ 추진
시교육청은 영어 교사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전 교사와 학생의 영어 구사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5분 생활영어’ 책자와 CD롬을 개발해 전 초중고교에 보급했다.
또 교사와 학생들이 원어민과 영어만 사용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영어전용 타운’을 건립해 운영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관련 기관과 협의 중이다.
시교육청 윤웅섭(尹雄燮) 교육정책국장은 “지난해 445명의 초중고 교사들이 4주 동안 미국 등 영어권 국가의 학교에서 인턴교사로 근무하며 영어수업 능력을 키웠다”며 “반응이 좋아 올해는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3월부터 한국교원대에 6개월 과정의 영어 집중 연수 프로그램을 개설해 학기별로 100명씩 모두 200명에게 영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교사영어연수 참가 정명순씨 “영어수업 이젠 걱정 없어요”

“전에는 영어에 자신이 없었는데 이젠 당당하게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중등 교사 영어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서울 용마초등학교 정명순교사(25)는 2년 전 3학년 영어수업을 맡았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남모르는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초등 3학년 영어는 기초과정이라 교사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수업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다 보니 학생 지도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반에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라도 있으면 혹시 발음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긴장하기도 했다.
정 교사는 “서울 교원연수원에서 두 번이나 영어 연수를 받았지만 효과는 별로였다”며 “수업이 끝나면 한국어를 쓰기 때문에 영어실력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의 수업은 오전 오후 3시간씩 하루 6시간 영어 수업을 받고,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원어민 강사와 함께 특기 및 취미 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원어민 강사의 인터뷰를 통해 수준별로 18개 반을 편성했기 때문에 학습 효과도 높다는 것.
“강사들이 수강생의 수준에 맞춰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데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항상 원어민과 어울려 대화할 수 있어 실력이 빨리 느는 것 같아요.”
정 교사는 “처음에는 원어민 강사가 쉬운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했는데 1주일 정도 지나니 신기하게 귀가 열리는 것 같았다”며 “4주 교육이 너무 짧지만 자주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인 정 교사는 주말 귀가도 마다하고 동료 교사나 원어민과 어울려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 교사는 “영어 듣기 말하기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영어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교육 방법도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자랑했다.
■ 영어캠프 참가 박천영군 “영어로 생각하는 습관 배워”

초등학교 3학년부터 2년 동안 부모와 함께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서울 고명중 2학년 박천영군(15).
귀국 직후만 해도 미국 학생들처럼 영어를 잘 했지만 국내 학교에 다니면서 영어를 자꾸만 잊어버려 안타까웠다. 학교 수업이 문법과 독해 위주로 진행되고 듣기시간도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영어를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서 영어 구사 능력이 계속 떨어졌던 것.
외국인 강사가 가르치는 영어 학원에도 다녀봤지만 수강생이 많아 영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고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과 공부하다 보니 효과도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이 마련한 이번 영어캠프는 박군이 영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 영어캠프에는 학생 5명과 한국인 전담교사 1명이 한 방에서 지내며 24시간 동안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학생은 퇴소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엄격하다.
박군은 “24시간 영어로만 말하며 생활하다 보니 영어로 생각하는 습관을 되찾은 것 같다”며 “마치 미국 학교로 다시 전학을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내가 영어로 말을 하면 외국인 선생님이 그때그때 틀린 발음이나 표현을 바로잡아주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쑥쑥 느는 것 같아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영어를 잘 하거나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도 영어 캠프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학교에서는 박군이 정확한 영어 발음을 구사하면 ‘와’ 하는 부러움과 질시가 섞인 탄성이 터져나와 부담스러웠다.
서울 시내 각 학교에서 온 친구들과 사귀게 된 것도 박군에게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원어민 강사 부모를 따라온 뉴질랜드 학생과도 좋은 친구가 됐다.
박군은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가 있어서 영어로 마음을 털어놨는데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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