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10여명 에이즈 감염

  • 입력 2002년 9월 13일 06시 45분


혈우병 환자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을 원료로 만든 국산 혈우병 치료제 주사를 맞고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울산대의대 미생물학교실 조영걸 교수는 “90년대 초 혈우병 환자인 청소년 10여명이 에이즈에 집단감염된 것은 91∼93년에 생산된 국산 혈우병 치료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12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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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국내 에이즈 환자 29명의 에이즈 바이러스 폴(pol)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집단감염된 혈우병 환자 4명과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매혈(賣血)했던 오모씨의 염기서열이 매우 유사하다는 논문을 최근 에이즈 관련 국제 저널에 발표했다.

본보가 입수한 당시 국립보건원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91년 국내 제약회사가 생산한 B형 혈우병 치료제에는 에이즈 감염자 오씨가 90년 매혈한 혈장 1개와 역시 에이즈 감염자인 김모씨가 매혈한 혈장 3개가 원료의 일부로 섞여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조 교수는 “혈우병 환자 12명은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게 확인된 상태에서 국내 제품을 주사 맞은 직후 에이즈에 감염됐고, 매혈자와 혈우병 환자들의 에이즈 바이러스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볼 때 국산 혈우병 치료제 때문에 감염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김선영 교수가 국내 환자 46명의 에이즈 바이러스 네프(nef) 유전자를 분석한 논문에서도 혈우병 환자 11명 중 9명이 외국에는 없는 ‘한국형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대부분의 혈우병 환자가 외국 제품에 의해 감염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부분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던 B형 혈우병 환자 18명은 국내 제약사가 91년 B형 혈우병 치료제를 공급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93년까지 무더기로 에이즈에 감염됐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한 보건당국은 치료제 원료의 에이즈 오염 사실을 숨긴 채 국산 치료제 때문인지 수입 제품 때문인지 알 수 없다고 발표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에 대해 국립보건원 면역결핍연구실 이주실 실장은 “에이즈 감염자 2명의 혈장이 국산 치료제 원료로 들어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조 교수 등이 분석한 혈액 샘플은 수가 적어 국산 제품 때문에 감염됐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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