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 강타]"낙동강 넘칠라" 뜬눈 밤샘

  • 입력 2002년 9월 1일 18시 21분


“엎친 데 덮친다더니,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수해의 악몽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태풍 루사가 강타하면서 낙동강 수계 곳곳에서 범람과 제방 붕괴가 잇따르자 경남지역 주민 수천명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애간장을 태웠다.

1일 하류지역에 홍수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낙동강 수위가 2일 오전까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주변 지역 자치단체 등은 밤새 비상경계를 폈다.

지난달 집중호우로 붕괴돼 응급복구를 마쳤던 합천군 청덕면 가현제방이 이날 다시 붕괴된 데 이어 덕곡면 병배천 제방과 적중면 옥두천 제방 등도 잇따라 무너지거나 범람해 합천지역 곳곳에서 물난리를 났다.

창녕군과 의령군에서도 제방의 누수와 범람으로 100여 가구 주민이 인근 마을로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고 농경지 침수도 잇따랐다.

주민들은 “이런 물난리를 겪지 않을 수 없느냐”며 당국의 수방대책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낙동강 하류에 홍수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일부 지점은 위험 수위를 넘기고도 수위가 계속 올라가 주민들은 범람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1일 오후 9시 현재 낙동강 적포교(위험수위 11.0m)와 진동지점(〃 10.5m)이 위험수위를 40㎝ 이상 넘어선 데다 하류인 삼랑진과 구포도 위험수위에 육박해 긴장감을 더했다.

지난달 장기 침수로 황폐화된 김해시와 함안군 지역 주민들도 할 말을 잃은 채 무심한 하늘만 원망했다.

10일 이상 물에 잠겼던 집을 대충 정리하고 벽이 마르면 도배를 하려 했던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시전리 김병문(金秉文·55)씨는 “농사도 모두 망쳤고 당장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한숨지었다.

역시 침수지역인 한림면 장방리 대항마을 정성우(鄭盛友·40) 이장은 “추석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30가구 정도의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불편한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주민은 주택 붕괴 등을 우려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

비닐하우스 농가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이미 심어둔 작물들이 모두 죽어 다른 종자를 심기 위해 비닐하우스의 땅이 마르기만을 고대했으나 앞으로 10여일을 더 기다려야 할 판이다.

한림면 전체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낙동강 수위가 자꾸 올라가면서 홍수경보가 내려진 데다 태풍으로 복구와 정리작업마저 일시 중단됐기 때문.

한림면 수해대책위원회의 백청사(白淸司·42)씨는 “지금으로선 낙동강의 범람 여부가 최대 관심사”라고 밝혔다.

함안군 법수면 주민들도 임시 물막이 공사를 한 백산제방에서 누수가 생기자 붕괴를 우려해 대피를 준비하며 밤새 불안에 떨었다.

김해〓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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