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委 심사 문제점]“탈락 교과서 현정권 치적 덜 다뤄”

  • 입력 2002년 7월 31일 18시 55분


‘교과서가 편협된 시각에서 기술되지 않도록 검정위원회가 공정하게 심사했다.’

이는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편파성 시비에 대한 교육인적자원부의 해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번 교과서 검정과정은 균형감각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본보가 ‘부적격’ 판정을 받은 고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3종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 교과서는 논란을 빚은 4개 교과서보다 전 현정권에 대해 훨씬 객관적으로 서술됐기 때문이다.

검정을 통과하지 못한 교과서 중 법문사 교과서는 김영삼 정권에 대해 금융실명제 및 지방자치제 실시 등 치적을 언급하는 한편 과실은 다루지 않았다. 이 교과서는 김대중 정권 출범에 대해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을 뿐 정권 출범 이후의 치적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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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정탈락 교과서들 정권평가 되레 공정

지학사와 디딤돌출판사의 교과서는 김영삼 정권에 대해 ‘경제(외환)위기를 초래했다’며 짧게 책임을 언급했을 뿐 다른 과실을 지적하지 않은 반면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은 성과로 꼽았다. 두 교과서는 김대중 정권에 대해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등을 평가하면서도 김영삼 정권에 대한 내용과 비교해볼 때 형식과 분량에 있어서도 균형을 유지했다.

사진 선정에 있어서도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와 부적격 판정을 받은 교과서는 차이가 났다. 논란을 빚고 있는 4종의 교과서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남북정상회담 등 전 정권의 실정과 현 정권의 업적을 나타내는 사진을 대비시킨 데 비해 부적격 판정을 받은 지학사의 경우 지방의회 소집 광경과 대통령후보 TV토론 등 가치중립적인 사진을 실었다. 디딤돌출판사는 YS 정권과 관련해 한중(韓中)수교, 금융실명제 실시 등 2장을 실은 반면 DJ 정권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취임식 장면만을 실었다. 법문사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전직 대통령들과 악수하는 사진 1장만을 수록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한 출판사에 보낸 ‘부적격 판정 이유서’를 통해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의 결여 및 ‘일정한 결론을 유도하여 사고과정을 제한’했다는 점을 검정을 통과하지 못한 이유로 제시했다. 하지만 검정에서 통과한 교과서들이야말로 평가원이 제시한 ‘부적격 판정 이유’에 부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정성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검정에 불합격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교육과정평가원의 부적격 판정 이유서를 검토한 결과 교과서 발행을 포기하라는 뜻처럼 비쳐 2차 검정에는 응하지 않기로 했다”며 “검정에서는 탈락했지만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술한 만큼 단행본으로라도 판매할 생각”이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관련 내용 비교
검정결과출판사김영삼 정부 관련 기술김대중 정부 관련 기술
적격중앙교육진흥연구소대형 금융대출사건인 한보사건과 같은 권력형 비리가 측근세력과 고위공직자들에 의해 저질러졌다개혁에 대한 시대적 욕구와 시민단체의 활동 속에서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
금성출판사보수세력을 기반으로 성립한 정권의 속성상 개혁이 한계에 부닥치고…외환위기 극복에 힘을 기울이면서 사회개혁과 민주화 추진을 계속
대한교과서여러 가지 비리의혹과 경제위기로 차츰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경제 위기를 맞은 후 정부 여당의 인기는 땅으로 떨어지고…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구조개혁에 노력했고 대북포용정책 (햇볕정책)을 실시해 남북화해를 추진했다
두산각종 대형 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사회불안 의식도 확산국민 협조 속에 개혁을 추진하고자 노력했다. 외환위기 극복 조치들은 실업자 증대와 외국자본의 지배력 강화를 낳았고…
부적격법문사금융실명제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두 전직 대통령을 단죄하는 등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언급 없음)
지학사세계화를 내세우며 경제 개방을 가속화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하였다경제 회복에 힘써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켜…
디딤돌국민의 여망에 따라 지방 자치제와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는 등의 개혁 정책을 폈다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켜 민족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썼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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