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 무차별 정치권 로비

  • 입력 2002년 4월 21일 18시 28분


여야와 정권을 넘나들며 권력 핵심부에 집요하게 접근했던 최규선(崔圭善) 미래도시환경 대표의 ‘처세술’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보인 ‘부나비 행태’는 때론 어지럽게도 보이지만, 몇 가지 분명한 처세 원칙 아래 일관되게 이뤄져왔다.

첫째 ‘권불십년(權不十年)’의 원리를 꿰뚫고 있었다는 점, 둘째 권력핵심부의 ‘관문(關門)’을 공략했다는 점, 셋째 국제적 인맥으로 국내정치를 요리하려 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양다리 걸치기〓최씨의 정치권 등장 시점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직전인 97년보다 앞선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YS 집권 시절 청와대의 한 비서관을 찾아가 “남아공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딸을 초청할 수 있다. 정국 전환의 이벤트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다는 후문이다. 또 당시 최형우(崔炯佑) 의원 등 상도동계 실세들을 만나 “국제관계역할을 나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97년부터는 DJ 주변으로 이동해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와 수행비서인 이재만씨,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 등을 쫓아다녔다.

최씨가 한나라당 인사들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 ‘이회창(李會昌) 대세론’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점.

최씨는 권력의 이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전 총재 주변 인사들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한다. 윤여준(尹汝雋) 정재문(鄭在文) 홍사덕(洪思德) 의원뿐만 아니라 진영(陳永) 변호사 등 이 전 총재 핵심측근들이 공략대상이었다.

▽관문 공략〓최씨는 핵심인사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면담과 일정을 조정하는 수행비서를 1차 공략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핵심인사의 환심을 사는 수법을 동원했다. 대통령 수행비서인 이재만씨에게는 수차례 용돈을 제공하고, 대통령 관련 정보를 얻어 이를 이권개입과 호가호위(狐假虎威)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권 전 최고위원의 일정을 관리하는 비서 문모씨에게는 재작년에 “차를 바꿔야겠네”라고 말한 뒤 곧바로 그랜저 승용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권력핵심부의 자녀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홍걸씨와의 관계는 물론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아들 취직문제까지 심부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 인맥의 활용〓최씨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국내 정치권을 파고 들었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조지 소로스 미 퀀텀펀드 회장, 알 왈리드 사우디 왕세자 등 국제 금융계의 ‘큰손’들을 초청해 김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한나라당에 접근한 구실도 이 전 총재의 방미(訪美) 일정이었다. 최씨는 윤여준 정재문 의원 등에게 “미국에 인맥이 많다. 도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의했다. 스티븐 솔라즈 전 미 상원의원은 올해 홍사덕 의원이 주최한 미 용산기지 이전 세미나에 참석한 자리에서 최씨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한국에 왔다”고 치켜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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