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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2월 14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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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준비를 계속하기 위해 입대를 몇 년 더 연기하고 싶었던 김씨는 고민 끝에 지난해 초 서울 D대학의 행정법무대학원에 진학했다. 입학전형이 쉬운 데다 학사관리도 느슨해 학업에 대한 부담 없이 시험준비에 전념할 수 있다는 선배들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실제로 입학식 이후 한번도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성적이 나왔다”며 “사시 준비생들의 대학원 진학 목적이 ‘입대 연기’라는 사실을 대학 측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일부 대학의 대학원들이 고시 준비생들의 ‘입대 연기처’로 이용되고 있다. 대학 측도 이를 이용한 ‘대학원 장사’로 실속을 챙기고 있어 대학원 교육의 부실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2년 전 서울 S대 법대를 졸업한 뒤 경기도 소재 K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한 이모씨(27)는 요즘 자신의 판단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이씨는 “학기당 등록금이 300만원을 웃돌지만 입대해서 시험준비에 차질이 생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며 “돈만 제때 내면 학교에서 모든 학사업무를 알아서 처리해줘 시험준비에 몰두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업에 전혀 참가하지 않고 단 한 건의 과제물을 내지 않아도 제적당하지 않을 만큼 학점이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D대 대학원에 진학한 박모씨(26·서울 S대 법대 졸업)는 “등록금만 꼬박꼬박 내면 학교에서 수강신청까지 알아서 해준다”며 “상당수 학생들이 입학 이후 단 한번도 수업에 들어간 적이 없지만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시험을 본 김모씨(26)는 “한 교직원이 주위에 입대를 연기하려는 졸업생이 있으면 데려오라고 권유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런 실태를 반영하듯 최근 3년간 매년 신입생 150여명씩을 선발해온 서울의 한 대학원에는 신입생 중 특정 대학 출신이 20∼40명이나 된다.
2년 전 서울 Y대 법대를 졸업한 김모씨(26)는 “중하위권 대학의 특수 대학원에 이름만 걸어놓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학생은 입영 연기를, 학교 측은 1인당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챙길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고 말했다.
이런 소문이 돌자 서울의 D대와 지방의 K대 외에도 최근 들어 지방의 다른 K대와 G대 등도 앞다퉈 대학원을 만들어 졸업을 앞두고 사시를 준비하고 있는 법대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홍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학생 유치와 ‘등록금 장사’에 급급한 일부 대학들의 이런 행태가 대학원 교육의 전반적인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