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 통과로 ‘고층습지’ 훼손 위기

  • 입력 2002년 1월 24일 18시 25분


올해부터 본격 추진될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이 국내 희귀 고층습지(高層濕地) 바로 아래를 터널로 관통하도록 설계돼 있어 환경단체 등이 노선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내원사 지율 스님등 5명은 “전국에서 고층습지가 가장 많은 천성산과 정족산으로 고속철도 터널이 개설될 경우 예상치 못한 환경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난 22일부터 노선변경을 촉구하는 국토순례를 시작했다.

고속철도 노선을 따라 다음달 초까지 순례에 나서는 이들은 “정확한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터널이 개설될 경우 늪의 물이 빠져 1만년 이상 지속돼온 ‘자연사 박물관’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울산지역 환경단체인 울산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정우규(鄭宇珪·이학박사) 교육분과위원장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지난 93년 고속철도 구간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으나 이는 정족산 무제치늪(울산시 울주군 삼동면)과 천성산 고층습지(경남 양산군 하북면)가 발견되기 전에 이뤄진 것”이라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 환경단체 등 26개 단체는 지난해 12월 ‘천성산 습지보전 대책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녹색연합 등도 습지보전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고속철도관리공단 백경래(白璟來) 설계관리처장은 “정족산과 천성산 지표에서 300∼400m 아래에 터널이 개설되기 때문에 습지가 고갈될 위험은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환경단체가 참여하는 가운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 고층습지에는 희귀 동식물 수백종이 서식하고 있어 무제치 1, 2늪(총 4개) 18만4000㎡는 지난 98년 12월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천성산 고층습지는 13개 가운데 화엄늪(12만4000㎡)이 다음달 1일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다.

울산〓정재락 기자 jr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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