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茂永씨 수사중단 개입”…검찰 “수지김 사건 단서확보”

  • 입력 2001년 11월 28일 18시 10분


‘수지 김 살해 은폐조작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외사부(박영렬·朴永烈 부장검사)는 28일 경찰이 지난해 2월 이 사건 수사를 중단하는데 이무영(李茂永) 당시 경찰청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밝히고 이 전 청장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시사했다.

검찰은 당시 이 전 청장이 김모 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에게서 사건의 진상을 전해들은 뒤 경찰 수사팀에 수사 중단을 지시한 정황을 확보했으며 이런 사실관계가 확인될 경우 이 전 청장을 직권남용 및 범인도피 혐의로 처벌할 방침이다.

검찰은 빠르면 29일 이 전 청장을 소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7일 검찰 조사를 받은 김모 전 국정원 수사1단장은 “이 전 청장과 김 전 국장이 함께 경찰 수사 중단을 주도했으며 경찰측에 사건의 진상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모 전 경찰청 외사관리관은 “국정원에서 대공 수사를 해야 한다고 해 사건 기록을 넘겼고 이를 이 전 청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고 이모 전 경찰청 외사3과장은 “당시 외사관리관이 ‘청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기록을 국정원에 넘겨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28일 김 전 국장을 소환해 이 전 청장에게 윤태식(尹泰植·43·구속기소)씨의 범행 사실을 알려주고 수사 중단을 요청했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했으며 김 전 국장 등 국정원 직원을 포함해 주요 사건 관계자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청장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는 김 전 국장의 진술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만약 이 전 청장이 김 전 국장에게서 ‘예전에 은폐됐던 사건이니 덮고 넘어가자’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면 이 전 청장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사 결과 당시 경찰이 ‘윤씨에 의한 살인사건’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가졌던 것으로 보이나 수사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과 경찰의 과장급 이하 실무자들은 상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것으로 나타나 형사처벌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87년 1월 사건 발생 직후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가 이 사건을 왜곡, 은폐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은 윤씨의 ‘납북 미수 기자회견’을 주선했던 당시 안기부 해외담당 부국장 장모씨를 불러 조사했으나 사건 은폐 사실을 부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당시 안기부와 외무부 관계자 3명에 대해 검찰에 출두하라고 통보했다.

한편 이 전 청장은 이날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그의 측근은 “국정원 과장 등이 경찰 수사자료를 가져가기 며칠 전에 김 전 국장이 청장실로 찾아왔지만 당시 이 전 청장이 외부에 나가는 길이어서 청장실 밖에 서서 잠시 얘기를 나눴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전 국장이 ‘협조사항이 있다’고 말하자 이 전 청장이 ‘실무자들과 얘기하라’고 답한 것이 얘기의 전부”라며 “국정원의 수사협조 요구도 이 전 청장은 외사관리관을 통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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