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서 민족화해 '희생자 위령제' 열려

  • 입력 2001년 5월 27일 18시 48분


원혼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원불교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원혼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원불교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6·25전쟁을 전후해 좌우대립으로 피로 물들어 한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비극의 현장으로 꼽히는 지리산 계곡에서 26일 ‘생명과 평화, 화해의 제사’가 열렸다.

이날 오후 지리산 뱀사골 달궁계곡(전북 남원시 산내면 달궁리)에서는 좌우대립 당시 죽어간 수만여명의 군경, 민간인, 빨치산, 인민군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제단이 차려졌다.

‘생명 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로 이름 붙여진 이날 행사에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됐던 장기수 출신 생존자를 비롯해 군경 및 좌우익 유족대표들뿐만 아니라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7개 종단과 190여개 시민단체 회원 등 4000여명이 참석했다.

수만여 원혼들이 찾아올 길을 닦는 길놀이와 이들의 한을 풀어 주는 씻김굿으로 시작된 이날 위령제는 정대(正大) 조계종 총무원장 등의 봉행사, 최창규(崔昌圭) 성균관장의 위령제문 낭독, 종교별 위령의제, 이애주(李愛珠) 서울대 교수의 진혼무, 유족 및 각계 대표의 위패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지리산 계곡을 뒤로 한 제단의 사방 벽면에는 전쟁 당시 이곳에서 공식 희생자로 확인된 3만여 넋의 명패가 빼곡하게 나붙었으며 명패와 함께 모셔진 이들의 위패는 승무와 동시에 태워져 하늘로 날아갔다.

6·25 당시 지리산 토벌군으로 참전한 박종만(朴鐘萬·75)씨는 추도사를 통해 “분단과 통일의 갈림길에서 형은 토벌대로, 아우는 빨치산으로 총구를 서로 겨눴던 이 지리산에서 죽은 모든 영혼을 위로한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는 15명의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도 참석했으나 공식 추도사는 하지 않았다.

군경 유가족 및 빨치산 출신 50여명은 서로 자리를 멀리 떨어져 앉아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50년간 쌓인 갈등을 풀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케 했다.

<달궁〓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