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한국사회는]"제정신으로 살기 힘들다"

  • 입력 2001년 3월 19일 18시 54분


《희망이 안보인다. 제 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들다. 이민 가고 싶다.

대전에 사는 김모씨(40·여·교사)는 최근 아파트의 반상회에 갔다가 매춘 제의를 받고 기겁했다며 동아일보에 전화로 울분을 토로해 왔다. 반장인 40대 주부가 독신인 김씨에게 “혼자 사는데 어떠냐”며 제안했고 주변 주부들이 거들었다. 김씨는 ‘제정신이 아닌 사회’에 살고 있다며 치를 떨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도덕회복 캠페인’으로는 치유되지 않을 만큼 정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보가 자문을 의뢰한 정신과 전문의 법학자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정신병리상태가 ‘특단의 치유가 시급한 중증’이라고 결론내렸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李時炯)박사는 “정신과의 시각에서 우리사회는 ‘정신적으로 병든 사회(Insane Society)’에 속하므로 구성원 개인에게 도덕과 준법만을 호소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면서 “국민 모두가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을 되돌아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 쓰는 순서▼
- '홀로서기 기피'
- 외모 만능주의
- 집단 히스테리
- 두얼굴의 '인격'
- 평등 지상주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생존 법칙’ 중시로 병리현상을 부채질했으며 최근 이민자 또는 이민 희망자의 급증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는 ‘의존장애’적 개인이 넘쳐나고 있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34세 젊은이 460만명이 부모에 기대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세만 되면 독립하는 선진국 젊은이와 달리 ‘의존 성향’을 띠는 신세대는 내탓을 네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여기에 독립적 인격이 형성되지 않아 감정이 극단적으로 오르내린다. 순하디 순한 젊은이가 거리낌없이 부모를 살해하는 등 극한 범죄가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부유층의 의존장애는 경제 시스템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엉뚱하게도 이를 ‘차별’로 간주하고 적대감을 갖는다.

너나 할 것 없이 무조건 획일적으로 똑같이 사는 것이 이상적 사회라는 ‘하향 평준화’ 증후군이 만연해 노조 간부가 사장에게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누군가 성공하면 장점을 배우려 하기는커녕 투서와 모함이 난무한다.

이 같은 ‘평등장애’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A가 잘 나가는데 내말을 잘 안들어 밉다’ 싶으면 A와 같은 업종에서 훨씬 못난 B와 C를 부추겨 A를 물어뜯어 망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이 같은 병리현상은 음모와 비열함을 본질로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의 사회.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성형수술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4억원을 들여 11번 수술하며 얼굴을 망치고도 또 수술하고 싶어하고 주름살이 하나도 없는 얼굴을 찡그리며 주름제거수술을 해달라는 여성도 적지 않다.

집단 히스테리와 도덕 무력증도 심각해 돈벌이를 위해 한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소중한 추억’을 사이버 공간에 올려 돈을 챙기는 파렴치한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權俊壽)교수는 “이 모든 병리현상의 바탕엔 불안장애가 도사리고 있는데 정부가 국민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아 의약분업, 인천공항 개항, 국민연금 등 주요 정책을 실험적으로 강행하고 있어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오명철차장(팀장·이슈부) 이성주 이호갑 이은우 김준석기자(이상 이슈부)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